등록 : 2007.04.18 17:49
수정 : 2007.04.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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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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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항거하여 몸을 불사른 허세욱씨가 보름 사투 끝에 숨졌다. 홍세화씨는 ‘서울의 택시운전사’인 그를 일러 “민중이 누구인지, 시민사회 운동이 무엇이며 진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순탄치 않은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알아내고 실천에 옮긴 우리 시대의 늠름한 민중의 표상”이라고 했다. ‘민중의 표상’ 허 열사를 떠나보낸 것은 시민사회의 크나큰 손실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하다.
허 열사의 죽음은 4년 전인 2003년 9월11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반세계화 시위’에서 할복저항으로 맞선 이경해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칸쿤에 갔는데, 안내인이 제일 처음 안내한 곳은 코바거리의 ‘이경해 분수’였다. 이 열사는 당시 농민시위의 선봉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농민을 죽인다. 더블유티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고 외치며 쓰러진 농민 지도자다. 이 열사의 죽음은 ‘보조금 철폐’를 외치는 농민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고, 미국이 주도한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다자 협상에 실패하자 미국은 양자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이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이경해 열사가 죽음으로 막아낸 미국 정부의 농민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허용했고, 미국 투자자에게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국가제소권마저도 인정했다. “농업은 이제 고려장의 장지로 가는 지게에 올랐다”고 조순씨가 한탄하듯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그러잖아도 가난한 농민이 절대 빈곤의 수렁에 빠지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기점으로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확산되면 초국적 대기업이 조정하는 강대국들이 가난한 나라의 농민을 죽이는 잘못된 세계화는 가속될 것이다. 허세욱 열사는 이처럼 거꾸로 가는 인류문명의 시계를 바로 돌리고 농민을 비롯한 가난한 제3세계 민중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목숨을 바친 이경해 열사의 뒤를 이은 것이다. 도시인들은 “농산물은 어차피 경쟁력이 없으니 값싼 다른 나라 농산물을 먹고, 우리는 경쟁력 있는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팔면 되는데, 왜 농민도 아닌 택시기사가 자살을 하고 난리야”라며 의아해한다. 허 열사가 위대한 것은 그가 농민 당사자가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도시의 택시운전사였다는 점이다.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는 “전태일-이경해-허세욱의 정신이 한국을 살리고, 핍박받는 세계민중을 살릴 해답”이라는 말로 조문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의 칸쿤 시장은 이경해의 숭고한 정신이 분수에서 내뿜는 물줄기와 같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라는 의미에서, 이 열사가 할복한 바로 그 자리에 분수를 만들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경해 분수’로 이름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농민조직 ‘비아캄페시나’(농민의 길)는 해마다 이 열사의 기일에 추모행사를 연다. 이 열사가 외친 “세계 민중을 죽이는 초국적 기업과 강국 주도의 잘못된 세계화 반대” 메시지를 전세계 민중의 외침으로 가슴속에 깊이 새기자는 의미다. 그 덕에 개발도상국 농민들은 코리아는 몰라도 이경해는 알고 있다고 한다.
앞이 캄캄해지는 절망과 슬픔에 처한 허세욱 열사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경해 열사의 정신이 지구 반대편의 도시에서 분수로 솟아오르듯 허 열사 역시 온세계 약자들의 저항의식을 고취시켰노라고. 그가 직접적으로 핍박받는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면에서 어쩌면 세계 민중의 역사에 전태일, 이경해 열사보다 더 용기있게 평가받을 거라고.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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