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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20 17:50 수정 : 2007.04.20 17:50

강정채 전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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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가운데 하나가 ‘옛날이 좋았다’거나 ‘선진국은 이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외국과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차이 또한 엄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시공간적 상황은 배제한 채 어느 한 대목만을 끌어다 자기 논리를 모자이크하는 방식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대선 정국에 접어들면 대학입시 제도가 핫이슈로 떠오르곤 하는데 이번에는 ‘삼불정책’이 그 논란의 핵심에 선 듯하다.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작심한 듯 ‘삼불’ 폐지를 주창하고 나섰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보수 언론들이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수능과 학생부가 변별력이 약해 우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없으니 ‘과거처럼’ 본고사를 실시하자는 것이요, 고등학교별로 학력 차가 있으니 등급제를 시행해 우수한 학생을 더 ‘정밀하게 선별’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또 재정이 약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있으니 ‘외국 대학처럼’ 기여 입학제를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간 학벌사회의 특혜를 마음껏 누리며, 부러울 정도로 우수 학생들을 선점해온 이들이 마치 우리의 대학 경쟁력이 ‘삼불’ 폐지에 달려 있기라도 한 양 주장한다는 점이다. 비평준화 시절 명문 중·고를 거쳐 본고사로 명문대에 입학했던 ‘옛날식’의 논리로 보자면 그렇게 보일 만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학의 위기가 정말 입시제도에서 비롯된 것인가. 과연 ‘삼불’ 때문에 고등학생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어 좋은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대학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지방 중소도시 대학의 한 학과에서 해마다 15명 가량의 학생들을 미국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시키는 사례에 대해서는 ‘삼불’ 폐지론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공부하는 방법과 재미를 몰랐을 뿐 대학이 노력한다면 학생들의 잠재력은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다”는 그 대학 교수의 말을 우리 대학인들은 경청해야 할 것이다.

‘삼불정책’이 영원히 존속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공교육의 붕괴를 막고 지금보다 더 지독한 사교육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대학들이 입시제도를 탓하기에 앞서 왜 많은 학생들이 우리나라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 명문대학으로 진학하는지에 대해 자성할 때이며, 대학이 인재를 선발하는 데만 골몰했지 인재를 교육하는 데는 소홀히했다는 사회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학 본연의 기능이 교육과 연구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지금 대학과 대학인이 고민해야 할 화두가 무엇인지도 선명해질 것이다. 대학 경쟁력 강화의 관건은 신입생 선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어온 학생을 어떻게 잘 교육하는가, 우수한 연구 성과를 통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지성인의 집단에서 주창되는 ‘자율성’이라면 그것은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 사회를 위한 자율성이어야 한다. 고작 학생 선발의 자유를 주장하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는 매우 이기적이고 편리한 방식이자 대학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복잡다기한 문제로부터 해방되어 독야청청할 수 있는 성역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 발전을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하는 곳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조직보다 강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강정채 전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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