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2 17:31
수정 : 2007.04.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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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제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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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승희씨의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당혹감은 조승희씨가 한국 사람인가, 아니면 미국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한국인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씨가 한국 국적을 지닌 미국 이민 1.5세 영주권자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조씨의 총기난사 사건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등 미국에서 이미 몇 차례 있었던 유사한 총기난사 사건과 구분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다.
우리 한국인들 대부분이 조씨가 대한민국 국적자라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거나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국적이나 혈통에 얽매여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자식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조씨가 비록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50% 이상 미국 사회의 자식이다. 이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견강부회가 아니다.
하인스 워드한테 훌륭한 한국인 어머니가 있었긴 하지만, 나는 그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시킨 것은 역시 미국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인종적·가족적 편견과 차별이 있는 한국에 있었다면 훌륭한 어머니의 보살핌만으로 지금과 같은 하인스 워드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혈통이나 한민족의 우수성 운운하면서 재외동포들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인종적 편견이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가려는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주노동자 수십만명과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전체 결혼의 12% 가량이 국제결혼이 되면서 이른바 ‘혼혈 한국인’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과 하인스 워드의 사례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내의 혼혈인과 외국인 자녀들을 하인스 워드로도 조승희로도 키워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혐오자가 아니라 친구를, 학살자나 연쇄살인자가 아니라 모범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이런 주장이 재외동포들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재외동포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면서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와 재외동포, 그리고 그들의 거주국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일은 재외동포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조씨의 경우에는 한인 공동체와 거의 소통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인 학생회 등과 좀더 소통을 하고 문화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신적으로 좀더 안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전 미국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언어적 차이, 새로운 환경 탓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 이방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민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이민자들을 보낸 나라나 받아들인 나라나 모두 힘써야 한다. 그것이 이번과 같은 비극을 줄이는 길일 것이다.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의 고통도 무척이나 크겠지만, 조씨의 부모나 형제, 자매들의 충격 또한 그에 못지않게 클 것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현/제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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