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5 17:35
수정 : 2007.04.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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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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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버지니아’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이 수그러들자 사람들은 하나둘 그 사건이 가져다준 여러 문제점들을 생각하는 듯하다. 그중 하나인 총기 혹은 무기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한국 국민들에게 그리 흥미로운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총기사고가 비교적 적어서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메이드 인 코리아’의 무기들이 세계로 수출되고 한국의 무기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과 다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7년 4월16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죽은 33명. 전세계적으로 무장폭력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은 최소 50만명. 우리가 이번 사건만큼만 다른 사건들에도 관심을 보였다면 아마 지금쯤 세계 곳곳에서 몇 개의 분쟁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2차대전에서 사용된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18만명이 생명을 잃었으나 지금 지구상에서는 해마다 그 수의 2.7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재래식무기, 특히 소형무기들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하루 1000명씩을 죽이고 있는 무기들은 강력한 통제장치 없이 인권침해가 극에 달한 분쟁 지역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무기는 공급 초과라 현재 케냐에서는 에이케이(AK)-47 소총을 염소 3마리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불법으로 유통된 무기가 심지어 겨우 20달러에도 거래되고 있다. 1997년 미국에서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34살의 아벤 진 롤레스는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 바 있다. “총은 담배만큼이나 구하기 쉽다.”
무기산업은 인간 살상과 신체 불구를 목적으로 설계된 금속덩어리 뒤에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살인적인 거래로 가장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을까? 바로 유엔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이며 이들 나라는 재래식무기 수출 시장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무기를 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무장분쟁이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의 나라들이다. 이를 수입하는 반대편의 나라들에서는 끊임없는 인권침해와 잔혹행위를 가중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빈곤을 비롯한 큰 고통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국방비는 의료와 교육 예산에서 소중한 자원을 갈취해 간다. 이들 나라는 대략 해마다 220억달러를 무장을 하는 데 사용한다. 이 중 절반의 비용만으로도 모든 아이들에게 초등교육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나라들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무기거래 관련법들이 실질적으로 무기를 통제하기에는 허점투성이다. 그리고 한 나라가 무기를 특정 구매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또다른 공급책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사회는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에서 국제무기거래조약 설립을 위한 안을 통과시켰다. 지지는 153표였고 반대는 1표였다. 그 한 표가 바로 미국이다. 국제앰네스티와 옥스팸, 국제소형무기행동네트워크(IANSA)의 주도로 3년 전부터 시작된 무기거래통제 캠페인이 실질적인 결실을 가져온 순간이었다. 실제로 조약이 만들어지고 실행되기까지 해마다 또다른 50만명의 생명이 무기로 희생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겠지만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생명 보호와 인권 옹호라는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것은 중요하다. 버지니아의 33명의 목숨과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거주하는 33인. 누구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있는가? 한국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줬던 관심이 일회성이 아닌 생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여하리라.
김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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