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02 18:03
수정 : 2007.05.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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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순/서라벌대 장례지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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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들은 삶 속에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간다. ‘다중 살인’이 이슈화한 시점에 죽음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죽음이나 주검을 가장 쉽게 접하는 곳이 바로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은 조문객들의 발길과 애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른들은 이곳에 와서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고, 먼저 떠난 고인이 좀더 편안한 길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고인을 추모할 것이다. 어른들은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장례식장이라는 곳에서 이렇게 예를 갖춤으로서 그들만의 슬픔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젖먹이나 어린이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슬픔도 모르고 사별의 아픔도 모르는가? 그렇지 않다. 어린이들, 심지어 영유아들까지도 슬픔과 죽음을 안다. 오히려 인성과 자아 형성기에 있는 그들에게 슬픔과 죽음, 이별은 더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장례식이나 장례식장 등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대하고,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죽음의 장소들은 차단되어 있다. 으레 어린이들은 장례식에 데려 가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관례가 되었다. 아니 데려간다고 한들 어린이들이 마땅히 있을 공간도 없다.
어른들만의 공간으로 한정돼 버린 장례식장. 전통사회에서는 장례식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초상이 났을 경우에 자택에서 고인의 상례를 치렀다. 가정에서 상례를 치름으로써 어린이들은 가족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또한 가족과 친지 그리고 마을 구성원들의 도움 속에 상례를 치르면서 그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인척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회가 영속적으로 존재함을 느꼈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터득했던 것이다. 사별의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묘지에서의 영별을 통해 그들은 죽음의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며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 1년 후 고인의 기일이 되면 그들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가족들이 고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공통된 사회와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체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죽음과 주검의 경험은 한 인격체로서 완성된 자아를 이루어 가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하지만 현대 영·유아기 어린이들, 심지어 청소년들도 죽어감, 죽음 그리고 주검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그들이 느끼고 보고 경험하는 죽음은 게임이나 텔레비전 속의 가상의 죽음이거나 기껏해야 집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의 죽음이다. 이런 죽음들은 모두 나와는 무관한 죽음들이다. 그래서 죽음은 목적이 아니라 대상이 되고 심지어는 놀이가 된다. 우리는 영·유아기나 청소년 때의 교육이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어린 시절 슬픔의 억제나 이별의 고통이 어른이 되어 심한 정신장애로 나타날 수 있고, 잘못된 죽음인식이나 죽음관은 잘못된 생명관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최근의 자살이나 잔혹한 범죄의 이면에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장례 관행이나 인식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죽음 교육’이 ‘인성 교육’의 하나란 사실을 새기면서 아이들을 장례식장에 데려가자. 장례식장은 이들을 위한 공간과 소프트웨어를 마련하자. 유아교육 전문 교사를 두고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대화나 놀이로서 유도해야 한다. 일상에서의 이러한 작은 경험이 슬픔과 좌절, 절망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나아가 긍정적이고 건강한 죽음관과 생명관을 품게 할 것이다.
이복순/서라벌대 장례지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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