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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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TV유치원’ 아침에 보고 싶다 / 배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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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4 17:44
수정 : 2007.05.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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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미/YMCA 어린이영상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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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아침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라졌다. 아니 옮겨졌다. 26년이 넘도록 매일 아침마다 우리 아이들의 졸린 눈을 깨우던 케이비에스1티브이(KBS 1TV)의 ‘TV유치원 하나, 둘, 셋’이 케이비에스 2티브이(KBS 2TV)의 ‘키드존’이라는 오후 시간대에 옷을 바꿔 입고 이사를 간 것이다. 어느 날이던가. 엠비시(MBC)의 ‘뽀뽀뽀’가 오후 시간대로 슬그머니 쫓겨난 이후 또다시 찾아온 서글픈 모습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의 아침시간은 불륜 드라마와 연예계 소식, 혹은 호기심을 조장하는 정보 프로그램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아침에 홀로 남아 천덕꾸러기가 된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후 어린이 전용 시간대로 옮겨 집중 편성한다는, 이른바 케이비에스의 ‘키드존’ 전략은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26년 넘게 방송되면서 수많은 어린이들의 추억 속에 정겹고 친근한 아침프로그램으로 뿌리 내린 ‘…하나, 둘, 셋’을 옮기는 명분이 될 수 있을까.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중파 방송은 흔히 어린이 프로그램을 희생양으로 삼아 왔다. 편성표에서 설 땅을 야금야금 뺏겨온 어린이 프로그램들은, 주말 편성에서 쫓겨나 평일 오후 4~5시로 밀려나더니 결국 ‘…하나, 둘, 셋’마저 아침 편성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하교시간과 맞물리는 오후 시간대가 왜 나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 시간대는 시청률이 가장 저조한 사각지대로서 사교육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의 생활 주기와도 잘 맞지 않는다.
어린이방송을 오후시간대로 밀어낸 데 더해 제작 환경은 또 어떤가. 액수를 알면 깜짝 놀랄 정도의 얄팍한 제작비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실무자들은 이제 방송의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가쁜 숨을 내쉰다. 각 공중파 방송의 정상급 드라마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거액의 제작 지원으로 화사한 화면을 뽐내고 있을 때, 그 뒤안길에서 어린이·노인·장애인 등과 같은 소수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이렇게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다.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방송법 6조5항이 아직 살아 있기나 한 건지 묻고 싶다.
케이비에스는 이번에 신설된 ‘키드존’이라는 2시간짜리 오후시간대가 온전히 어린이만을 위해 마련된 공영성에 입각한 과감한 편성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케이비에스 자료를 보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순수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유아교육 정보 프로그램으로 학부모 시청률을 높이려는 내용이 더 눈에 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린이가 주인이어야 한다.
‘꽃과 같이 곱~게 나비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크는 우리.’ 이 노랫소리를 기억하자. 가난과 전란의 상처가 남아 있던 지나간 라디오 시대에도 이 나라의 어린이들은 날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린이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였다. 티브이 시대로 이어지면서 ‘뽀뽀뽀’ ‘호랑이 선생님’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말괄량이 삐삐’ ‘텔레토비’ 같은 양질의 외국 프로그램들도 또래 어린이 집단의 소중한 기억으로 공유돼 왔다.
더는 어린이를 어른 시청자들의 부속 집단으로 여기지 말고, 그들도 주권을 갖고 있는 소중한 시청자 계층으로 대우하자. 공영방송들은 어린이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되돌려줘야 한다. 하루빨리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아침시간으로 돌려 놓기 바란다. 아침시간 몇분만이라도 맞벌이 엄마와 아이가 이 정답고 오래된 어린이 장수 프로그램을 함께 만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배경미/YMCA 어린이영상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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