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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6 17:47 수정 : 2007.05.16 17:47

이덕우/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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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5·18 광주 민중항쟁 27돌이다. 다음달로 6월 민주항쟁 20돌이다. 대선 예비주자들은 광주를 찾고 의례적 행사는 어김없이 열리겠지만 어쩐지 한바탕 수선처럼 다가온다. 5·18 광주를 박제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5·18 광주 민중항쟁을 기억하고 영령들을 기리는 한편에서는 그 학살의 주범인 일해 전두환 기념관을 세운다고도 한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났다. 평범한 시민 신귀영씨는 어느날 수사관들에게 끌려가 고문에 이은 거짓 자백, 형식적인 재판 끝에 간첩이란 멍에를 지고 수십 년을 살았다. 평범한 선원으로 배를 탔다가 고생 끝에 돌아왔더니 자신이 간첩으로 둔갑해 있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던 태영호 납북어부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울먹이며 고통을 호소한다. 대한민국 경찰이 인민군복을 입고 민간인을 학살한 나주부대 사건의 유족들은 또 어떤가. 이들의 피눈물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땅에 정의와 인권이란 것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5·18 광주 민중항쟁과 같은 집단학살을 비롯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고문 등의 중대한 범죄, 혹은 그러한 범죄자 처벌을 의도·조직적으로 방해한 국가기관의 범죄를 일컬어 ‘반인권적 국가범죄’라고 한다. 국제법적으로는 ‘반인도적 범죄’라는 범죄 행위 유형에 든다. 국제법에서는 ‘불처벌 불가(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의 원칙’과 ‘시효 부적용의 원칙’을 확립하여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극악한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있다.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설치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물론 여기에 어깃장을 놓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범죄로 말미암아 피해를 본 이들의 아픔은 대물림되어 지속되고 있는 반면, 가해자들은 오히려 이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남아 일말의 반성 기미도 없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현실을 똑똑히 보고 있다.

국제법상 확립된 원칙을 대한민국에도 들여놓기 위하여, 처절한 인권유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그동안 인권운동가들과 단체들은 공소시효 배제 특별법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2005년에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2년이 되어도 이 법안은 국회에서 단 한번의 공청회도 열지 못한 채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죄형 법정주의니, 형벌 불소급의 원칙이니 하며 반대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거 범죄자들을 소급하여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인면수심의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 법안의 내용도 모르면서 반대하는 것이다. 만일 법안의 내용을 알고도 반대한다면 결국 앞으로도 극악한 범죄자들에게 공소시효라는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5월 중에 공청회를 열고 6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만 한다.

5·18 광주 민중항쟁 27돌, 이제 더는 반인권적 국가범죄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불행한 과거를 묻어둔 채 화해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5·18 민중항쟁 정신을 박제화하는 또다른 범죄일 뿐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는 일에 나서야 할 때다.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이 통과되는 날, 그 때 비로소 5·18을 조금은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이덕우/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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