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7 18:52
수정 : 2007.05.1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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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아트재테크〉 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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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길바닥에서 행려병자로 죽어간 천재화가 이중섭의 이야기를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환쟁이가 밥 빌어먹고 살던 시대가 지난 지는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만의 활황이라며 지난해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미술품 투자시장의 열기는 우주 대폭발인 ‘빅뱅’에 비견될 정도의 위력으로 일반대중의 ‘잠자던 물욕’까지 끄집어내며 계속되고 있다. 바야흐로 그림이 ‘돈’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미술품 투자가 미술시장의 개미군단까지 만들어내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세계 최고가 미술품 가격 신기록이 연이어 경신되며 서민은 들어도 어떻게 헤아려 볼 도리조차 없는 1억3천만달러가 넘는 값에 구스타프 클림트와 잭슨 폴록의 그림이 거래됐다. 이런 최고가 기록은 분명 세계 미술품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활황에 힘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되어 지금에 이르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부자되기’ 열풍이 나라 전체를 휩쓸며 20대는 물론, 은퇴를 대비하는 중장년층, 실버시대를 맞는 노년층, 심지어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이재(재테크) 바람이 연령층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부동산, 주식 말고 새로운 투자 대상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것과, 부자도 이왕이면 벼락부자 말고 ‘고상한 부자’가 되고픈 사람들의 욕망이 어우러져, 또, 잘사는 작은 나라 한국의 특성상 뜨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현재 내가 가진 돈의 액수나 취미에 상관없이 누구나 돈되는 길로 몰리는 심리가 맞물려 지금의 빅뱅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 한 채보다 더 값진 그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하기 시작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의 가치가 수치화되어 아름다움에 부정할 수 없는 숫자의 권위가 더해졌다는 점, 제2의 데이미언 허스트를 발견해 내려는 화랑과 수집가들의 관심으로 유망한 젊은 작가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고도 긍정적인 사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절대부’가 있는 곳에는 꼭 그만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그림자는 막강 권력의 비호 아래 지금까지 무수한 의혹만을 낳았던 ‘미술대전 비리사건’에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초기의 국전 수상 작가들 중 몇몇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비싼 그림의 작가가 되었다는 것과, 예술의 특성상 검증받을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신인 등용문의 하나인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리가 자행되어 왔다는 것은 근자의 미술시장 활황과 맞물려 더욱 어둡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좋은 그림이 비쌀 수는 있어도 비싸게 팔려고 좋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흙탕물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몇 마리 미꾸라지이듯 ‘절대부’에 현혹된 몇몇 작가나 미술계가 더는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투자 대상 이전에 예술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삶의 목적과 가치를 확인시키는 과정이다. 예술이나 예술가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힘들고 지친 순간, 그 도움의 위력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빅뱅이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켰듯이 최근의 미술투자 바람이 좀더 미래지향적이고 선진적인 미술시장 탄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박경민 〈아트재테크〉 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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