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9 17:38
수정 : 2007.05.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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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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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 사회에 조선학교가 다가오고 있다. 조선학교는 1945년 이후 일본 땅에 존재해온 실체인데,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 실체를 보지 못했다. 잘 보이지 않았고 또 보려 하지도 않았다. 60여년이 지난 이제야 그들을 보려 하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 김용택 시인,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수경 스님, 오충일 목사, 정희성 시인, 전종훈 신부도 보려 하고 있다. 지난 25일, 이들은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을 조직하고 대중적 조선학교 모금운동을 선포했다. 한국 사회가 조선학교에 한 발 다가선 순간이다. 2002년 ‘망언 제조기’ 일본의 대표 우익주자 이시하라 지사의 도쿄도가 조선학교를 상대로 “학교 운동장은 도쿄도 땅이니 내놓고 학교를 그만두라”는 소송을 걸었는데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1억7천만엔(14억원)에 학교가 토지를 매입하라는 것이었다.
조선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1945년 이후 일본 땅에 남아 살아가는 재일 조선인들이, 자녀들만큼은 이전처럼 자신을 비굴하게 낮추거나 일본인 행세하며 자신을 속이지 말고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말을 가르치고 민족문화와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다. 조선학교는 그들에게 가장 뚜렷한 업적이다. 우뚝 솟아 있다. 만일 조선학교가 없었다면 재일 조선인, 재일 조선인 사회, 재일 조선인 역사는 그 이름조차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조선학교는 하나의 프리즘이기도 하다. 조선학교를 통해서 보면 일본이 잘 보인다.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과 태도는 바로 일본인들의 일본관,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바로미터일지 모른다. 조선학교를 통해서 보면 한국도 잘 보인다. 한국의 부끄러운 실체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들을 버리고 일본과 손잡고 탄압한 과거의 참담한 모습, 아무런 손도 못 쓰는 한국 정부의 현주소, 방향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아이들과 교육과 사회의 모습들이 그대로 부각된다. 물론 조선학교를 통해서 보면 분단된 한쪽인 북한도 보인다. 그러니 일본 땅의 조선학교를 통해서 보면 남북이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조선학교 역시 세계에 산재한 소수민족 교육기관의 하나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그러나’가 따라붙는다. ‘일본’과 ‘조국 분단’이라는 특수성, 바로 이 조건이 조선학교를 ‘가치의 보고’로 만든다. 식민지 지배-피지배의 역사가, 일본 중심의 근현대사 전개 과정에 형성된 모든 질곡이 풀리지 않고 응축된 채 조선학교를 누르고 있고, 여기에 분단의 질곡이 얹혀 있다. 학교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일은 그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이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일이다. 그 안에서 뭔가를 지키려는 처절하고도 부단한 몸부림이다. “재일 조선인들이 학교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모두 부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1945년 이후 60여년간 자신들의 ‘생명선’이라 부르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조선학교에는 틀림없이 많은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한국 사회가 조선학교를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결함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조선학교에 다가선다는 것은 이를 메워 나가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다른 관점에서 일본을 보고 우리를 보며 조선학교(재일 조선인)의 힘에 접근하는 일이기도 하다.
운동장 매입가격 14억원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들이 이제 모금운동을 한다며 내보이는 이 관심과 애정의 크기는 그들과 비교할 때 과연 얼마만한 것일까? 지원과 함께 겸손도 필요하지 않을까?
황의중/‘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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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사무국(전화 02-336-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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