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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9 18:13 수정 : 2007.06.19 18:13

이지석 세명대 교수·국제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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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한 농부가 매년 줄어드는 수확량을 걱정하다가 새로운 씨앗을 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씨앗은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첨단 육종기술로 개발된 것이라 한다. 며칠 뒤 밭에 나가 본 농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밭에는 드문드문 싹이 돋아 있을 뿐 희망찬 푸른 밭의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1999년에 민간인과 공무원의 공개경쟁을 통해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했다. 개방형 직위제의 장점으로는 전문성 향상, 자연스런 인사교류 확대, 폐쇄적인 관료조직의 개방 등이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중앙인사위원회 자료를 보면, 46개 기관의 210개 개방형 직위 가운데 민간인이 임용된 곳은 겨우 63자리뿐이며, 104자리를 공무원이 차지했다. 심지어 법제처, 국정홍보처, 검찰청, 경찰청 등 15개 기관은 민간인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민간 전문가와 공직사회 간의 관계는 ‘씨앗과 밭’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밭의 토양과 맞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듯이, 민간 전문가들도 공무원 조직에 대한 분석과 연구 없이 영입될 경우에는 실패하게 된다. 강의 남쪽에다 심으면 귤이 되지만, 그것을 북쪽에 심으면 왜 탱자가 되는지를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 초나라의 영왕에게 말하기를, 답은 바로 ‘물과 흙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민간인 임용 비율이 낮은 원인을 공직사회의 폐쇄적 문화와 해당 부처의 의지 부족, 그리고 관료조직의 배타성 등으로 돌린다. 즉 씨앗은 우수한데 밭이 시원찮아서 재배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우수한 민간 전문가들을 개방형 직위로 모셔 오면 만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인가?

개방형 직위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농부가 씨앗만 도입했을 뿐 밭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정부는 8년째 개방형 직위제로 민간 전문가들을 채용했을 뿐 그들이 제대로 구실할 수 있도록 관료조직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상당수 기관에서 개방형 직위에 자기 식구를 임용하려는 형태를 보였으며, 민간인을 채용한 기관에서도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바람에 ‘무늬만 개방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씨앗도 너무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밭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했던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나는 이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익혔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공직사회에서 받아줘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부는 개방형 직위제를 위해 관련 부처의 조직체제도 개방형 인사 조직에 적합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임용된 전문가들을 곧바로 직무에 투입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관료조직 및 해당 부서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이른바 공직사회의 인턴제인 셈이다. 또한 중앙공무원연수원의 ‘고위직 정책과정’을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가능하다면 선진사례를 연구하고 자료수집을 할 수 있도록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업무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국외연수는 얼마 전 문제가 된 감사들의 외유성 국외연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명칭도 민간 전문가들을 행정기관으로 영입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공무원 사회에서 계약직은 ‘얼마 있으면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계약직’보다는 ‘전문직’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할 필요도 있다.

귤을 탱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물과 흙을 연구하여 더욱더 우수한 귤을 생산할 것인가는 오로지 농부 손에 달렸다.

이지석 세명대 교수·국제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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