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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6 17:24 수정 : 2007.06.26 17:24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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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자 사망 후 50년까지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한다. 이 기준을 따른다면, 1949년 6월26일에 세상을 떠난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는 1999년까지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었다. 저작권 보유자가 엄청난 수입을 챙겼겠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와 유족들이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득실로만 본다면 저작권을 주장하는 게 타당하겠지만, <백범일지>가 널리 읽혀서 백범의 삶과 사상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관계자들의 대승적 결단으로 <백범일지>는 정치적, 이념적, 당파적 분열과 대립을 뛰어넘어, 심지어 경제적 득실도 뛰어넘어 높은 보편성을 지닌 텍스트가 된 셈이다.

얼마 전 국회의원 모니터 전문 매체 <여의도 통신>에서 ‘국회의원이 뽑은 존경하는 인물’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264명의 의원들이 설문에 답한 결과 1위는 김구(79명), 2위는 이순신(31명), 3위는 정약용(16명)으로 나타났다. 3순위 복수답변까지 합치면 96명의 의원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을 꼽았다. 주목할 점은 소속 정당이나 정파에 상관없이 백범에 대한 선호도가 고르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렇게 존경하는 인물이 같아도 정치적 이해득실 앞에서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현실인가 보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파 간, 대권 주자 간 이합집산이나 대립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평소에는 화해와 상생을 입버릇처럼 외치다가도 정치인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두고서는 갈등으로 치닫곤 하는 게 정치의 생리라 하겠다. 하지만 갈등의 도가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외면하게 하는 정치상황에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익숙해 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백범이 이에 대해 남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나의 소원’ 중에서)

대통합을 도모한다지만 이해득실에 따라 분열하고 있는 범여권에도,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지만 집안 다툼이 격화되고 있는 한나라당에도, 지역과 계층,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하여 사회 통합을 이루어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에도, 남북 분단의 갈등 구조를 극복해야 할 우리 민족에도 두루두루 절실한 말이다.

바라기로는, 2009년 새로이 발행이 추진되고 있는 고액권 화폐 속에서 백범의 이러한 뜻을 늘 되새길 수 있는 상징을 찾을 수 있으면 한다. 2009년은 백범 서거 60주년이기도 하니 그 시의성도 범상치 않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인 백범 김구를 도안 인물로 삼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까지 유효한 그의 메시지와 뜻을 담는 일이다.

더구나 남북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데 백범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또 있을까. 이념 차이와 체제 갈등을 뛰어넘어 민족적 보편성을 지닐 수 있는 인물이 백범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차가 남북을 오가는 것을 보고, 필자는 민족의 분열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1948년 4월19일 38선을 넘었던 백범을 떠올렸다. 백범에게 좌니 우니 하는 이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화시킬 수 있는 하나된 민족국가만이 중요했다.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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