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6 18:04
수정 : 2007.07.06 19:03
|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
기고
화장로 16기, 봉안당 20만위, 장례식장 20실 규모의 장사시설은 하남시의 지역발전에 꼭 필요한 시설인가? 필요한 건 알지만 자기 지역에는 안 된다는 장사시설 설치를 위해 경기도는 2천억원의 지역개발 지원금을 약속했다. 하남시장은 이 시설을 상산곡동에 유치한다고 발표한 뒤 9월에 주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장사시설 터를 결정하는 데 주민투표가 최선의 방법인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장사시설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던 주민들이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들은 대신에 시장을 대상으로 주민 소환투표를 청구하고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데도 장사시설을 추진하는 것은 권한을 남용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주민소환법에, 유권자의 3분의 1(3만 5018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2분의 1(1만 7510명) 이상이 찬성하면 시장은 직위를 상실한다.
하남시장은 이에 맞서 서명운동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수원지방법원에 냈다. 장사시설 설치 업무는 적법한 공무집행이므로 주민소환 사유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자치단체장의 소신행정을 견제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주민 소환투표 청구서명과 투표운동 과정에서 장사시설 반대주민들이 허위사실을 전파하고 시장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5월28일치 신문 사설에서 화장장 유치처럼 찬반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정책적 선택을 놓고 소환투표를 하는 것은 주민소환법 제정 취지에 어긋나므로 꼭 필요한 시설의 유치와 관련해서는 주민 소환투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전체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가 쫓겨난다면 어느 시장·군수가 님비(내 집 마당엔 안 된다)를 극복하려고 하겠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1조는 “…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자치단체장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결단과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절차의 비민주성을 견제하는 데도 목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한 것이다. 찬반이 팽팽한 갈등에서 자치단체장의 소신과 독선은 구분이 모호하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광역화장장을 유치해 얻는 2천억원의 인센티브로 지역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기겠다는 하남시장의 소신은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화장장 때문에 보게 될 피해를 걱정하며 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이 맞설 때는 공개 토론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다.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가 이루어지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어려울 때는 다수결에 승복하는 것이 차선이다.
주민투표와 주민 소환투표 둘 다 주민 참여를 확대한다는 목적이 같고 방식도 비슷하다. 찬반 양쪽 당사자들이 대등하게 참여해 각자의 주장을 충분히 얘기한 후에 시민들의 심판을 받는 공론화 절차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무집행 방해, 정치적 악용,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의 우려는 하남시민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자. 하남시장한테는 주민 소환투표의 적합성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장사시설에 대한 주민투표와 함께 진행해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수 의견이 다수결에 승복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자치단체장의 민주적 리더십을 강화하는 기회로 주민소환제를 활용하자.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