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0 18:13
수정 : 2007.07.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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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변호사·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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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제정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은 제도의 큰틀을 정할 뿐, 로스쿨 학생수, 졸업생 진로, 연수 방법 등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이 문제들의 향배에 따라, 법률서비스 산업 도약의 기틀이 마련될지 아니면 일본처럼 불행한 답보사태로 전락할지가 가려질 것이다. 변호사로서, 그리고 법률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으로서, 교육 및 평가 과정 개선, 선발시험 제도 변혁, 연수제도 변혁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학 교육과 성적평가는 담당교원이 전권을 행사해 왔다. 필자가 근무했던 영국 대학은 다르다. 주요 법률과목의 경우 성적 처리가 완료되면 문제지와 답안지를 전부 다른 대학 교수에게 보낸다. 그래서 문제 난이도, 출제 범위 적정성, 답안에 나타나는 학업 성취도 등을 ‘외부 심사원 보고서’ 형태로 작성해 공개한다. 사법시험만으로 법률가를 선발해 온 우리는 법률교육에 무관심했고 대학교육 품질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는 실정인데, 차제에 이 문제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동안 법조인 선발 시험은 우리 국민정서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을 지배해 왔던 고시제도의 후진성을 담고 있다. 한판 승부가 공정하다, 시험이 어려워야 인재를 가려낼 수 있다, 변호사는 수재가 해야 한다는 따위의 천박하고 근거 없는 발상들 …. 고시제도는 이처럼 몽매한 편견과 낙후된 정서가 똬리를 틀고 있는 음습한 그늘이었다.
로스쿨 성적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는 동시에 각 학교 졸업생 상위 50%는 별도 시험 없이 변호사로 진출하게 하고, 하위 50%에 대해서만 시험을 치르게 하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로스쿨 사이 불필요한 서열이 생겨날 리 없으며, 각 학교는 전문성과 다양성으로 경쟁할 것이다. 전국 어느 로스쿨이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면, 우수 인재가 ‘지망단계’에서 전국으로 분산될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 판단을 하는 존재다. 일본의 경우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한 로스쿨이 네 곳 있다. 이런 로스쿨이 제대로 법률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고시학원’으로 전락할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사법연수원은 진작에 폐지되어야 했다. 연수생 급여만도 해마다 약 350억원, 시설 유지·운영비까지 계산하면 매년 약 500억원이 든다. 배출자 대다수가 변호사로 진출하는 마당에 국민 세금으로 자영업자 연수에 이런 규모의 보조를 계속할 명분은 없다. 법원, 검찰, 헌법재판소, 국회, 공정거래위 등은 적정 수의 지망자를 스스로 선발하여, 급료를 주고 일을 시키며 일을 가르쳐야 한다. 행정부, 지자체, 공기업, 사기업, 법무부서 등도 같다. 모두 ‘연수생’ 명찰을 달고 연수과정을 똑같이 거쳐야 한다는 발상은 법률 서비스의 다양화, 전문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연수제도의 핵심은 물론 변호사 사무실(로펌)이 수행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 수습변호사 채용을 원하는 로펌은 연수계획을 마련하여 변호사회의 승인을 받고 급여를 주면서 2년 동안 일을 시키고 가르친다. 인턴·레지던트처럼 수습 변호사는 영국 로펌의 중요한 노동력 제공자다. 우수한 법률인력은, 다양한 채용 주체가 이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변별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판 시험으로 평생 승부를 가르고, 연수과정 내내 일은커녕, 등수 가리기 시험 준비에만 골몰하도록 하는 제도로는 우리 경제 규모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법률인력을 길러낼 수 없다. 로스쿨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운영될지가 중요하다. 고시 합격자를 배출했다고 해서 온 마을이 잔치를 벌이는 후진성은 이제 옛 추억으로 묻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기창/변호사·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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