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소/산마을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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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국대 교수이자 2008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내정자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파문이 일파만파다. 진상 조사에 착수하고, 검찰에 고발하고, 관계자 사퇴가 이어지고,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게 된 배경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신데렐라의 꿈이 일순간 무너지면서 도미노처럼 우리 사회의 병든 곳을 건드리고 있다. 간단하게 진위를 가릴 수 있는 학위 소지 문제를 유수한 대학에서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검증을 철저히 요구했던 재단 관계자가 해임됐다 하니, 유력한 배후의 존재 여부로 관심이 쏠린다. 광주비엔날레의 감독 선임 과정도 의혹의 대상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발탁 과정이 뿌린 내린 사회라면 윤리 의식이 희박한 개인의 지략과 술수가 통하지 않았을 것인데, 합리와 이성을 넘는 부조리한 요인들이 여전히 발호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대한민국을 작동시키는 공적 시스템이 여전히 중병 상태에 있으며, 그 치유 과정이 지난함을 보여준다. 신정아씨는 미술관 통역 아르바이트로 출발해 큐레이터 경력을 쌓고, 참신한 감각과 기획으로 대학교수와 광주비엔날레 감독의 자리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그 파죽지세의 동력에 예일대 박사라는 선망과 질시의 학벌이 무시 못할 작용을 했으리라. “아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지금이 어느 때냐, 21세기 대한민국은 실력만 갖추면 정당하게 평가하고 대우받는다, 다 자기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이리 항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정아씨 파문이 확대되는 와중에, 공중파 영어강의 프로그램의 인기 진행자 이지영씨와 만화가 이현세씨도 그간의 ‘위장 학력’을 고백했다고 한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또 지금까지의 활동과 작품을 볼 때 ‘진품 학력 소지자’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역량을 지녔음에도 커밍아웃한 것은 신씨와 싸잡아 매도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신씨의 경우 시작부터 의도된 위장이었지만, 두 이씨는 사정이 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사람됨의 품성을 논할 때 앞자리에 위치할 정직과 진실의 무게를 가벼이 처리하자는 게 아니다. 정직과 진실마저도 뒤로 물러서도록 강박하거나 유혹하는 배경과 배후가 제거되면서 동시에 개인의 도덕성도 강조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능력이 출중해도 학벌 자본 인맥이 없으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힘들다. 실력과 능력은 부수적이고 학벌 자본 인맥이 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엄정한 도덕성과 합리적이고 치밀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벌로 치장하거나 자본과 인맥을 동원하면 가짜도 진짜로 둔갑시킬 수 있으리라는 수많은 신데렐라 예비군들에게는 신정아씨의 몰락이 안타까울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을 통해 입지를 구축하거나 구축할 수 있음에도 위장 학력의 강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가짜 행세를 처음부터 의도하거나 시도하지 않았지만, 주목을 받고 입지가 높아지는 만큼, 그에 합당한 학력이 있으려니 단정하면서, 위장 학력을 강제한다. 이지영씨도 처음부터 가짜 학력의 둔갑술을 부리지 않았고, 이현세씨는 끊임없이 고졸 학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스스로 성취했음에도, 그럴듯한 학력과 학벌을 강제하는 사회에서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위장을 해야 했으니,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변변한 학력과 학벌을 내세우지 못하고서는 평생 마이너 취급을 당하는 구조 속에서, 개인의 부도덕과 비윤리적 행위를 조장하는 철옹성 같은 학벌사회는 과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까.윤영소/산마을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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