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23 17:35
수정 : 2007.07.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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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푸른학교 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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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랜드에서 근무하던 2500여 비정규직 노동자들(계산원)이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대량 해고되었다. 정부는 복직을 희망하며 20여일 잠도 못 자고 투쟁을 벌이던 노조원들을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로 해산시켰다. 시위를 주도하던 노조 집행부는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졌다.
토요일 오전 11시 뉴코아 야탑점 매장 앞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을 들여 보내려는 점주와 막으려는 민주노총 및 시민단체들 사이의 실랑이가 오고갔다. 잦은 몸싸움도 벌어졌다. 한쪽은 나가라고 하고 또 한쪽은 절대로 못 나간다고 자리에서 꼼짝을 안 했다. 이따금 비가 내렸다.
“이제, 그만 좀 가주세요. 우리가 당신들 잘랐어요? 이게 벌써 며칠 째예요. 왜 우리한테 와서 못살게 굴어요. 항의하려면 국회로 가세요. 청와대로 가세요. 거기 가서 따지란 말이에요.”
“직원 둘 한 달 120만원씩 월급 주려면 못해도 30만원어치는 팔아야 하는데 당신들 때문에 하루 10만원 매상도 힘들어요.”
점주들의 악에 찬 음성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대부분 여자들이다.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도 쏟아져 나온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거구의 사내 한 명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점점 수가 불어난 그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만들지 말자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노동자들 아닌가.
“저희도 계약직이에요. 몇 달 후에 와 보시면 사람들 다른 데로 가고 몇 명 없을 거예요.”
“저희도 힘들다고요.”
“네, 압니다. 저희도 여러분 사정 잘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매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달랑 맨몸입니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해고되었어요.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비정규직법을 지키기 위해서 … 쫓겨났어요. 지금 해고되신 분들 자리에 누가 와 있나요? 같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들도 계약서를 썼겠지요. 만료일이 다가오면 해고되고 또 거리로 나앉게 될 것입니다. 그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들도 우리 같은 처지가 되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도 더욱 치열해졌다. 전경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시위대들과 점주들의 아귀다툼을 구경하고 있었다. 책임자인 듯한 남자는 이따금씩 나타나서 불법집회임을 강조하고 해산을 명하고 사라졌다. ‘생존권 사수, 우리도 먹고살자.’ 시위대의 펼침막에도 점주들의 펼침막에도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러니다. 전국 30여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이 선명히 그려진다. 간간이 다른 지점의 상황이 들린다. 한 지점에서는 보다 못한 시민들이 이랜드 ‘매출 0 투쟁’에 함께 참여하고 있단다.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대기업, 거대자본의 책략과 횡포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른다. 한 해 십일조만 수십억원을 낸다는 이랜드 회장은 고작 80여만원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 돈이 없어서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서서 근무했던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았을까? 이랜드는 기독교 기업이 아니던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랜드가 진정한 기독교 기업이라면, 그리고 법을 지킬 마음이 있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 것이 아니라 합당한 절차를 거쳐서 정규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성경엔 불법 시위가 없다는 말에, 성경엔 비정규직도, 해고자도 없다는 말로 응수하던 젊은 여성노동자의 한맺힌 말을 이랜드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랜드는 상품을 팔기 이전에 먼저 해고자들에게서 양심을 사라.
김인철/푸른학교 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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