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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31 17:36 수정 : 2007.07.31 17:36

서현주/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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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아침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에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 노예를 강요한 사실을 인정, 사과하고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97년 관련 결의안이 처음 하원에 제출된 이래 일본의 로비 등으로 번번이 무산되다가 일곱번의 시도 끝에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됐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일본 정부에는 상당한 정치적 압력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결의안의 채택은, 1992년 1월18일 이래 16년째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해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외침에 국제사회가 화답함으로써 그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오랜 염원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또한 국제정치가 자국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현실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 연대 등 도덕적 가치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흐름도 존재함을 보여준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6월22일 결의안의 외교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가토 료조 주미 일본 대사는 하원 지도자들에게 만약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미-일 관계에 중대하고 장기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를 비롯한 일본 정부와 정치계의 노골적인 채택 저지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미 하원이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인권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200만명에 육박하는 재미 한인들의 풀뿌리 운동과 정치적 영향력 증대가 이번 결의안 통과에 큰 힘이 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지서명 유권자 명부 전달, 지역구 의원에게 지지서명을 촉구하는 편지 보내기, 지지서명을 받기 위한 의사당 방문 등 결의안 채택을 위한 재미 한인들의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미국내 한인단체들 간은 물론 앰네스티와 같은 국제적 인권단체, 여타 아시아계 단체와 연대하여 활동한 것은 소중한 성과다.

이제 공은 일본 정부에 넘어갔다. 이번 결의안 통과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와 국민은 “결의안은 인권과 화해에 관한 문제이며 일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최초 발의자 혼다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두 세대도 훨씬 전에 일어난 참혹한 여성 인권 유린의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일방적 책임 추궁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을 홀로 고통스럽게 간직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를 통해 화해의 길을 열고자 함이다.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과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며, 정부 소장 문서를 공개하여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진상을 밝히는 데 적극 나선다면 그 길은 생각보다 쉽게 열릴 수 있다. 또한 이런 잔혹행위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을 역사교과서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확산시켜 나간다면 아시아 여러 피해국들과의 신뢰 회복과 협력 관계 증진도 획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사람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없으며, 비인간적인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다시금 그러한 위험성에 감염될 소지가 많다”는 경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길 간곡히 권한다.

서현주/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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