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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4 18:58 수정 : 2007.08.24 18:58

류웅재/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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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엔에서 채택한 한국에 관한 인종차별 철폐조약 이행 관련 보고서는 ‘순수혈통’ 혹은 ‘혼혈’과 같은 용어와 여기에 담긴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순수함 혹은 순결함의 허구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오던 “순수하고 우수한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별 의구심 없이 우리의 생활세계 속으로 침윤되어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우리의 의식과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이 돼 왔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태도는 분명 국가의 품위 제고에 어울리지 않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이고 전략적 차원에서도 최상의 선택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는 비분강개하면서 우리 자신의 유사한 행위에 대해서는 때때로 관대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슬픈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도 한다.

물론 민족주의가 한국의 정치 및 문화적 지형에서 여전히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이면에는 그에 상응하는 역사·현실적 연유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서 보통의 한국인이 꺼리는 일들을 도맡아 하는 이주 노동자들, 전쟁과 식민지와 기지촌이 낳은 아이들, 우리의 비좁은 시야를 넓혀주는 외국인 친구들, 그리고 농어촌 총각 열에 넷이 결혼한다는 외국 출신 여성들이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을까. 또 그들을 앞에 두고 뜬금없이 민족과 혈통의 순수성을 운위할 수 있는 건가. 선택의 여지는 있다. 이들을 껴안아 활짝 열린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든, 혹은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은둔과 자족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되돌아가든.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 드라마 대조영에서 대조영의 아들은 고구려와 거란의 피가 반씩 섞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거란과 돌궐 등 오랑캐로 호명되며 그간 우리가 역사의 조연으로만 여겼던 민족의 기개와 역량은 우리에 버금하거나 역사적 모멘텀을 함께 창조해 나가는 동반자로 그려진다. 지인 중에 진씨가 있는데, 그는 시조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의 수사제독 진린 장군이라 했다. 안팎으로 고난에 처한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적 호의적으로 대했다는 진린에 관한 그의 가족사의 진술이 사뭇 신선하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후기 중농적 실학자로 알려진 반계 류형원이 8대 할아버지라 듣고 자랐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전쟁통 속에 할머니 중의 한 사람이 이여송이나 고니시 유키나카, 혹은 하멜의 딸로 이땅에 태어났을 가능성을. 그러면 내 안엔 반계 할아버지와 동시에 이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피는 결코 순수하지 않고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한 번도 순수하지 않았다. 우리는 4천여년의 역사 중 600여 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외침을 겪은 민족이라 한다. 그 수많은 전쟁 중에 적군의 병사를 아버지로 둔 전쟁고아와 미망인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모든 문화가 혼성인 것처럼 세상의 어떤 민족도 완벽하게 순수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은연중에 불순하지만 다문화의 풍요로움으로 역사의 유장함을 견뎌왔고 또 그런대로 한 세상을 살 것이다. 이는 결코 운명에의 순응을 예찬함은 아니나 쉬쉬하며 숨길 일 또한 아니기에, 오히려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가꾸어 나가야 할 우리의 초상이며 유산이다. 흔들리는 억새풀처럼 강인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너그러운 사회를 가꾸어야 한다. 언제나 너를 간직한 내 마음과 같은.

류웅재/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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