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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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998년 46살의 젊은 나이로 현대자동차 사장이 되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회사들 대부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태였다. 530억달러를 긴급 지원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1000%를 웃도는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출 것을 주문했고, 이에 정부도 대기업 집단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인 필자도 이러한 정부의 시책에 따라 기업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느라 세계 금융시장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5억달러 상당의 글로벌 주식예탁증서(GDR)를 통해 외국투자자들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기업설명회(IR)를 벌였다. 미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던 중 유난히 자주 나온 질문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소수지분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가진 주주와 일반 투자자들 사이 이해상충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현대자동차의 순환출자구조(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현대캐피탈-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 등)의 문제였다. “순환출자구조 아래서는 소속 계열회사에만 자원배분이 집중됨으로써 시장이 왜곡되고, 일부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순환출자로 말미암아 다른 계열기업까지 동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는데, 당신은 현대자동차 사장으로서 이 심각한 문제를 언제까지 해결할 것인가?”라는 것이 핵심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순환출자의 문제’는 늘 주된 관심 대상이었다. 지인인 한 대법관으로부터 “상법상 명문으로 상호출자가 금지되어 있으며, 순환출자는 상호출자의 변형에 불과하므로 현행법상으로도 법률위반이라는 판결이 가능하다”는 요지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하여 직접 구성했던 현대자동차의 순환출자구조가 결국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10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 바 있다. 그런데도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회사들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지한다는 등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순환출자를 확대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일부 회사들이 지주회사의 설립을 통해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순환출자를 통하여 기업을 지배·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 사장에서 국회의원으로 바뀌었고, ‘10년 안에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던 그 10년이라는 한정이 다가오지만, 많은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그뿐만 아니라 상법이 금지하고 있는 상호출자의 다른 변형에 지나지 않는 순환출자에 관하여 스스로 그 문제점을 찾고 이를 개선할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재계는 순환출자 금지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마치 순환출자가 국제표준인 양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특히, 이미 지주회사제 도입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했거나 진행 중인 엘지·지에스·씨제이·두산·에스케이·동원·에스비에스·농심·태평양·금호산업·한진중공업·동양메이저·한화·코오롱·대상 등 적지 않은 기업집단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전경련이 ‘재계’라는 이름으로 ‘순환출자는 지나친 기업 죽이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전경련이 대기업 집단 위주의 이익단체라고 해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과연 순환출자가 ‘기업의 생명줄’이라면, 이를 금지할 경우 대기업 집단이 정녕 죽어버릴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우리가 할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이계안/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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