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1 18:06
수정 : 2007.09.11 18:06
|
김철환/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
기고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1975년 4월의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판결과 2007년 9월 수백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재벌 총수와 사법(司法)을 사법(私法)화한 재벌 총수의 항소심 판결이 그러하다. 75년 인혁당 대법원 판결은 무력(武力)에 무력(無力)해진 사법부가 절대 권력에 빌붙은 것이고, 2007년 재벌 총수의 항소심 판결은 재력(財力)에 주눅 든 재판부가 재력(才力)을 발휘하여 재벌 총수를 구해준 것이다. 75년 인혁당 판결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짓밟은 것이고, 2007년 재벌 봐주기 판결은 많은 국민들이 갈구하는 경제 민주주의의 싹을 잘라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평생 업고 가야 할 업보가 75년 4월9일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다. “추악한 권력의 주문을 그대로 판결로 받아 쓴” 당시의 사법부는 안보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군부 권력을 거부하지 못한 사법부가 선택한 결과는 민주주의의 말살이었고, 생명의 존엄성을 찬탈한 것이었다. 아니, 이에서 그치지 않고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을 죽인 것이었다.
그런데 사법 살인이 자행된 지 37년이 지난 오늘에 다시 서울고법이 사법부가 업고 가야 할 업보 하나를 더 얹었다. 단지 달라진 것은 국가안보 논리 대신에 경제발전 논리가 똬리를 튼 것뿐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유예해도 좋다는 군부 정권의 논리를 수용한 70년대의 사법부가 2007년에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민주주의를 유예해도 좋다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이 판결의 주심 판사는 “현대차가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1위이며 정 회장은 현대차의 상징”이므로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차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주심 판사도 자기의 지혜와 덕을 감추고 속인과 어울려 지낸다는 뜻의 사자성어 ‘화광동진’(和光同盡)을 인용했다. 이런 자기 합리화는 무지의 소치거나 아니면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을 인질로 삼은 재벌에 대한 교언영색이다.
총수는 몰락하였으나 기업은 오히려 총수가 경영할 때보다 더 잘나가는 기업들이 현재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 기업이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는 것이 전적으로 재벌 총수의 경영 능력에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절대왕정 시대의 사고다. 왕성하고 성공적인 기업 활동의 근원은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와 뛰어난 전문 경영층의 존재,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게 뒷받침해주는 기업 총수의 노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총수와 기업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것은 총수에 빌붙어 사는 영악한 속물들뿐이다.
이번 판결이 함축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희생을 제물로 하여 이제 우리는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획득한 것으로 착각하는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정치제도의 부분적 변화에서 멈추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삶에 뿌리 내리도록 하자면 경제 민주화도 이루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경제 민주화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이 있다. 재벌을 편들고 싶으면 그렇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구차하게 국민의 경제적 안위를 들먹이는 상황논리로 감추지 말라. “검사스럽다”는 말로 조롱받는 법의 권위가 이번에는 “판사스럽다”는 말로 강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법부를 위해서도 그렇고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도 그렇다.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 인혁당 판결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법의 건망증이 도지는가?
김철환/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