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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2 18:11 수정 : 2007.09.12 18:11

김민웅/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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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지금 외롭다. 그 인문학과 멀어진 인간도 외롭다. 텔레비전·라디오, 그리고 신문을 포함한 언론매체에서 그건, 없으면 뭔가 섭섭해 갖춘 장식 정도가 아닌가 싶다. 또는 지식인의 골방에 갇혀 있다. 인간의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희망의 신선한 상상력을 길러낼 수 있는 인문주의의 힘은, 현실감 떨어지는 특정 소수의 한가한 취미처럼 취급받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가 한때 열광하면서 세운 도시는 숲을 밀어낸 자리에 들어섰다. 사슴과 다람쥐와 까치, 그리고 여치와 풍뎅이들은 추방당하고, 계절을 따라 지고 핀 꽃들이 흐드러졌던 산등성이는 무릎을 꿇은 죄없는 죄수의 머리처럼 깎여 나갔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자꾸 거칠어지거나 쉽게 절망했다. 살기에 너무 바쁜 도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서글프지 않았다. 그것이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우칠 인문주의 정신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도시의 누군가가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깨닫는다. 도시는 다시 숲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인문주의가 뿜어내는 생명력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더는 가치가 없다고 판정을 받아 폐기되어 버려질 듯했던 존재에게서도 새로운 탄생의 길을 열어내는 것이 인문주의의 힘이다.

미디어는 바로 이 인문학 또는 인문주의의 사회적 혈관이 될 수 있다. 언론매체를 ‘권력’이라고 여기는 기존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미디어는 인간의 실존과 역사의 진전에 봉사할 수 없다. 기회만 주어지면 권력은 진실을 관리하고, 자본은 인간의 고통조차 상품으로 시장에 진열하려 들기 때문이다. 인문주의 정신은 이런 현실의 모순과 질곡을 넘어설 행복을 향한 의지와 상상력을 길러준다. 그런 피가 흐르는 미디어는 좋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적 장치이자 사회적 자산이다. 지식의 차이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격차를 막아낼 수 있는 평생학습의 지식생태계이며, 새로운 인문학적 발상으로 산업의 창조적 가치를 일구어낼 수 있는 현장이다. 절망의 지점에서도 유쾌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혼의 사제가 된다.

일방적으로 소통했던 미디어의 시대를 1.0이라고 한다면, 미디어의 개방과 공유, 그리고 참여의 시대를 여는 현실은 그보다 진전된 2.0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기술의 발전은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모두의 인간적 진화를 이루어낼 인문주의 정신과 텔레비전. 하기에 따라서는 좀더 깊게 만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의 시대의 텔레비전은 다만 눈부시게 발달한 기술 융합이 빚어내는 현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겨야 할 인간의 진실, 인문주의의 숲이 무성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디어의 21세기적 모델이 실현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문주의 정신이 역동적으로 솟구쳐나는 사회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를 더욱 풍요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적 위상 확립에 고민하는 이 사회에 이런 정신의 확산과 일상적 소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다. 2.0 시대를 열어나갈 텔레비전이여, 인문학과 만나라. 그것이 새로운 창조적 산업 가치와 공익적 목표를 함께 구현해 나가야 하는 미래의 미디어가 멋지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의 실존에 진솔한 자세로 다가서는 인문주의 정신의 부활은 그래서 미디어의 블루오션이다. 인문학의 이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자, 새로운 희망의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하늘의 별들이 바람 길을 타고 강 위로 쏟아지는 전설을 도로 찾고 사람의 마음에 유쾌한 힘을 불어넣을 줄 아는 도시는 누구도 고독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김민웅/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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