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자/한남대 경찰학과 객원교수·전 종암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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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04년 8월 다시 죽자고 생각했다. 팔에 피가 흘렀다. … 정말 남자들이 싫었다. 돈도 싫고 나 자신도 싫었다. 미칠 것 같았다.” “주위에 탈성매매 여성이 있다면 손만이라도 잡아줬으면 좋겠어요. … 우리가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런 길로 빠진 것뿐이에요.” 지난해 성매매 여성들이 묶어낸 수기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팔았다>에 담긴 그들의 고통서린 육성은 절절하다. 23일이면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한 지 3년이 되지만, 이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나 자립할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정불화나 부모의 폭행, 헤어날 길 없는 가난 탓 등으로 우연히 유흥업소에 발디딘 이후 빠져든 눈물겨운 삶인데, 어찌 단속만으로 고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이 당당히 세상으로 걸어나오게 하자면 ‘탈업소’ 이후의 실질적 자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담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성매매 업소에서 여성들을 묶어두는 수단으로 써 왔던 선불금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음을 명문화한 것이다. 폭행이나 감금, 인신매매를 통해 성매매를 강요당해 온 피해여성들이 빚의 악순환을 끊을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경찰 단속의 긍정적 측면과는 상관 없이 성매매 여성은 단속을 피하느라 이곳저곳을 헤매다 오히려 빚이 늘고 가족들 생계가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만만찮게 발생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음성적으로 주택가로 흘러들거나 국외까지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결국 경찰의 성매매 단속은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만 키운 격이다. 강제되었든 자발적이든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은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나 이를 다룰 경찰력은 턱없이 부족해 경찰력의 안배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종암경찰서장 재직 당시 1300여 업소 중 이발소 한곳만 단속하는 데 경찰이 15명이나 동원됐다. 그나마 업소의 뛰어난 방어술로 허탕치기 일쑤였다. 결국 무리한 경찰 동원으로 일반 치안이 어려워지게 돼 미성년 성매매와 성인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근절에만 치중해야 했다. 현재 전국에 업소가 20만 곳이 넘고 성매매 여성은 최소 3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에 반해 성매매 단속 전담부서인 여성청소년계 직원은 1000명도 안 된다. 이 숫자로는 100년이 넘어도 35만명도 단속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수십, 수백명의 남성을 상대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성매수자·업주까지 포함하면 성매매가 근절될 날을 환산할 수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참으로 어렵게 단속해서 빚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성매매 여성들이 다시 성매매 굴레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 업무까지 제쳐두면서 밤잠 못 자고 단속했던 성매매 여성들이 다시 되돌아가는 걸 보면 억장이 무너져요.” 성매매 전쟁 이후 여성청소년계 여자경찰들의 넋두리다. 왜 이들은 지옥 같은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까? 그것은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현실성 떨어진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한 사례로 생계비 지원을 보자. 탈성매매 여성에게 6~12개월 동안 매달 44만원을 지원하는데, 이것마저도 예산이 여의치 않아 극히 일부만 받고 있다. 요식적인 의료·법률·생계 지원뿐 아니라 나아가 일자리를 주고, 단지 쉼터가 아닌 임시거처라도 마련해 줘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1977년부터 5년 동안 말뫼지역의 성매매 여성 218명을 상대로 단속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지원, 주거 지원, 직업 알선, 전문상담원의 지도, 보건의료 서비스 등 국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72.5%가 탈성매매에 성공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김강자/한남대 경찰학과 객원교수·전 종암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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