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27 18:14
수정 : 2007.09.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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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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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너무 처참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제주도에 태풍 나리의 피해 복구를 위해 왔던 한 병사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비가 와도 즉시 땅속으로 스며 들어 절대 홍수가 안 난다는 섬이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에 연간 강수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0㎜나 되는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쑥대밭을 만들었다. 더구나 섬 전체를 뒤덮어 가고 있는 골프장과 도로 및 도시의 확장이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 화를 더 키웠다고 한다. 이런 피해의 근본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제주도 주변 해수의 온도상승이다. 모두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무차별 국토개발이 초래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100년간 지구 평균 상승온도인 0.74도보다 무려 두배나 높은 1.5도가 높아졌다. 원래 태풍이 한반도에 다가오면 차가운 바다를 만나 열을 빼앗기면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되는데 이제는 오히려 위력이 더 세져 가고 있다. 특히 태풍 나리는 지구온난화로 해수온도가 26도 안팎으로 유지된 결과 고위도에서 발생해 에너지를 더 증폭시켰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 내내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들이 동네에 들끓었다. 속 날개가 빨간 작은 매미같이 생겼는데 나무에도 땅바닥에도 심지어는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에도 붙어 있다. 궁금해서 조사해 보니 중국 동남부에서 유래된 아열대성 꽃매미라는 벌레다. 한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거의 없던 말라리아 환자가 90년대 후반 이후 해마다 많게는 수천명씩 발생하고 있다. 여름 내내 식중독도 예년의 두 배 이상 발생했다.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징조다. 온난화와 함께 아열대성 질병이 한반도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젠 제주도의 경우처럼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대재앙이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닥칠지 누구도 모른다.
생태계 파괴를 외면하고 성장을 통한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한 것이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이다. 이것을 당장 바꾸지 못한다면, 지구 온난화는 머지않아 인류문명을 파멸시킬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경유 수입이 어렵게 되자 연료로 나무를 잘라 쓰는 바람에 숲이 사라지자 엄청난 홍수피해로 식량난이 가중됐다. 중국도 난개발로 해마다 수백만명의 수재민이 생기는 등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환경지속성지수가 146개국 중 122위에 머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난개발 국가다. 홍수지도 등 재난지도를 만들어야 하고 난개발을 중지시켜야 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 뒤 처음 주재하는 62차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우리 손에 달린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이번 총회에서 반 총장은 온실가스 감축에 부정적이던 미국이나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개발 공약으로 경제성장을 외치기는 해도 환경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후보는 오랫동안 환경운동에 앞장서 왔던 문국현 후보 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의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왜곡해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대운하론은 이제 한나라당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버렸다. 제주도 홍수처럼 지구온난화의 재앙은 멀리 있지 않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환맹’ 대통령은 재앙을 불러오는 재앙 대통령이다. 대선후보들에게 태풍피해 예방 등 지구온난화 대책을 내놓으라고 국민들이 요구하자.
이기영/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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