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클레먼스/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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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류는 태고 이래 한시도 갈등과 전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는 크든 작든 민족 간 혹은 국가간에 이념, 영토 혹은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끊임없이 다퉈왔다. 한편으로 인류는,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무수한 인명을 앗아가거나 장애를 일으키는 수많은 감염성 질병과 쉼없는 침묵의 전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백신은 오랫동안 질병과의 싸움에서 가장 강력하고 비용에 견줘 효과적인 무기였다. 주목할 것은 위험한 질병들은 국경이 없기 때문에 백신은 또한 유용한 평화의 수단이 되어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18세기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던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영국이 나폴레옹 지배하의 프랑스와 싸우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이 백신을 프랑스에 도입했다. 또 냉전의 절정기였던 1950년대에 미국인 의사 앨버트 세이빈은 자신이 개발한 혁신적인 소아마비 백신을 옛소련의 과학자들과 함께 임상 평가하여, 이 백신은 미국과 소련에서 사용되었다. 더 최근에는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들이 전세계 소아마비 퇴치 노력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휴전을 주선한 뒤, 모든 어린이들이 백신을 접종받도록 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피터 호테츠 교수는 이러한 감동적인 노력들을 ‘백신외교’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촌에서는 아직도 매일 5살 미만 어린이 1만6000명이 감염성 질병에 희생되고 있다. 특히 희생자의 90% 이상이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이다. 희생자의 일부는 효과적인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희생자는 한국 등 부유한 나라 어린이들에게는 이미 널리 접종되고 있는 백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백신연구소(IVI)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백신을 보급하여 이러한 백신격차를 줄이기 위해 설립된 세계 유일의 국제 연구기관이다. 유엔의 주도로 설립된 독립적인 국제기구로 다음달 10돌을 맞는 국제백신연구소는 현재 세계 40개국과 세계보건기구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또한 국제백신연구소는 22개 국가에서 설사병, 세균성 수막염 및 폐렴, 일본뇌염, 뎅기열 등 이른바 ‘잊혀진 질병들’을 예방하기 위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세계와 함께 나눌 새로운 백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국제백신연구소는 북한 의과학원과 함께 어린이 세균성 수막염과 일본뇌염 예방을 위한 대북 협력사업에 착수했다. 이들 질병은 세계적으로 매년 40만여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며, 더 많은 아이들에게 영구적 신경장애를 남기는 무서운 질병들이다. 이 질병들은 도스(1회 접종분)당 몇달러에 지나지 않는 저렴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으나 북한을 포함한 많은 개도국 아이들은 아직 접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백신연구소는 북한이 백신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자국 어린이들에게 이들 질병에 대한 신세대 백신을 보급하도록 북한의 과학 및 보건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 한국 통일부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협력사업은 첫 단계로 약 3000명의 북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들 질병에 대해 국제적으로 승인된 백신을 시범접종할 예정이다. 앞으로 국제백신연구소는 더 많은 나라들과 협력해 나감으로써 국제백신연구소가 개발하는 새로운 백신 과학기술의 혜택을 개도국 어린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한국 유일의 국제기구 본부인 국제백신연구소가 범세계 ‘백신외교’의 전도사로 참여하게 된 것은 실로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존 클레먼스/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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