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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09 18:00 수정 : 2007.10.09 18:00

이영록/한국토지공사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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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 정상회담’에 따라 북녘땅을 통해 바로 백두산에 오를 관광길이 트이고, 서울~백두산(삼지연 공항)을 오가는 하늘길이 열리게 된다는 소식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다.

필자는 2000년 9월 남북 분단 이후 민간인에게는 처음 열린 서울~평양 직항로를 이용하여 북한의 삼지연 공항을 거쳐 5박6일 동안 백두산 일대 관광을 한 바 있다. 그해 6월 남북 정상이 만나 일군 ‘6·15 공동선언’의 후속사업 중 하나로 결실을 본 백두산·한라산 교차 관광 덕분이었다. 북쪽의 한라산 관광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7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백두산 직항로 개설은 관광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남북 긴장 완화는 물론 북한 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상생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의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사업을 여타 사업에 앞서 추진했던 것도 관광이나 경제협력 문제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사안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읽힌다.

그동안의 백두산 관광 추진과정을 살펴볼 때 변화가 많고 복잡미묘한 내외 정세 아래서 사업 추진이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다.

우선 백두산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인가. 곧 관광 대상을 선정하는 일이 남북 양쪽 사이에 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떠오르리라고 본다. 이는 금강산 관광과는 차원이 사뭇 다를 터이다. 2000년 당시 관광단이 둘러본 관광 대상의 상당 부분이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연계된 항일유격전 전적지나 관련 조형물 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관광 참여 인사들을 상당히 곤혹스럽게 한 기억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관광단 사이에서는 관광 자체를 거부하자는 논의도 있었고, 실제로 관광단에 참여했던 국회의원들은 관광 일정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기도 했다. 우리 쪽 언론으로부터는 ‘묻지마 관광’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북한으로서는 ‘혁명의 성산’으로 일컫고 있는 백두산 일대의 ‘혁명 사적지’를 비롯한 이들 항일 투쟁의 현장들이 외부인들에게 가장 자랑스레 보여주고 싶은 관광자원일 수 있다. 우리에게는 북한이 기리고 보존하고자 하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백두산 관광길에 앞서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백두산 관광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다.


백두산 관광은 단순히 북녘의 산하나 풍물들을 둘러보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같은 겨레이면서도 반세기 넘어 무참히 흘려보낸 세월 속에 깊어만 가는 남북 사이의 이질성에 물을 타고, 그 벌어진 틈을 메워나가려는 마음이 곁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십수년 전 중국과 수교가 이뤄져 중국 땅을 돌아 중국 쪽 백두산에 올라 눈물을 흘리고 만세를 불렀던 우리들의 심사가 무엇이었던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50년 넘게 키워온 남북 사이 이념, 정치·사회적 환경, 경제체제상 간극을 메우는 일은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시간적으로도 상당히 늦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것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리다.

남북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서로 충격과 부담을 적게 주면서 질그릇을 다루듯 조심조심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노력이다. 변화의 불씨를 살리고 지켜가려면 서로 체제와 가치관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한테만 변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각자가 하기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점보다는 선을,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영록/한국토지공사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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