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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0 18:33 수정 : 2007.10.10 18:33

변진옥/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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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가 다룬 에이즈에 걸린 소녀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드라마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에는 에이즈에 걸린 소녀에 대한 냉대와 차별에 분노하며, 그들을 격리시키지 않아도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배려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끝났다. 에이즈는 작은 외딴섬의 착하고 예쁜 소녀가 수혈로만 걸리는 것이 아니다. 더 거대한 사회 속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경로로 감염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그런 현실 속에는 ‘에이즈 예방법’이 있다.

질병의 예방은 일차적으로는 건강상태를 유지하여 발병을 막는 것, 이차적으로는 조기에 발견해서 빠른 치료와 관리로 질병의 진행을 막거나 늦추는 것, 삼차적으로는 재활 및 사회복귀, 그리고 장기적인 관리를 계속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에이즈 예방은 비감염인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하고, 감염사실을 일찍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질병으로 말미암은 신체·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국가와 국민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질병 ‘예방법’의 본질이다. 그런데 현재 에이즈 예방법은 이러한 예방을 가로막고 있다. 아직 예방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일차적 예방을 하자면 전파를 막을 실천 방법과 수단을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것이다. 불완전한 정보는 막연한 불안감만 불러올 뿐 예방적 행위를 실천할 동기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정해진 성파트너’와 ‘콘돔 사용’을 강조하는 단순화된 행동지침 속에서는 원치 않는 성행위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지, 콘돔 사용의 방법과 이것이 거절되었을 때 어떻게 조처할지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기검진은 어떤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냉대가 엄연한데 감염인의 명단을 국가가 실명으로 가지고 있는 한, 보건소의 문턱을 넘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감염인이 건강을 유지하더라도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그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는 한 예방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권 중심의 새로운 예방법’이 필요한 것이고, 다행히 이러한 법안이 작년에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국가의 질병관리에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인식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정부가 수집하는 것은 정작 질병을 관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검사의지를 꺾을 뿐인데도, 검사촉진을 위해 익명검사를 하되 익명보고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감염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면서 실제적인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전파 매개행위 금지조항으로 감염인을 처벌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 국회는 여전히 ‘감시’와 ‘통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좋아하는 소위 ‘국민의 정서’라는 것은 편견에 기반을 둔 그들 스스로의 오해다. 질병을 가진 ‘사람’에 대한 실효성 없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실제 관리되어야 할 ‘질병’은 퍼져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을 국민의 정서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푸른도의 소녀는 중학교도 가야 하고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 뭍으로, 현실 속으로 걸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변진옥/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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