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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6 18:02 수정 : 2007.10.16 18:02

변광수/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기고

우리는 어느새 외국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든 다인종·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해 신고한 국내 결혼 건수의 12%가 국제결혼이고, 농촌총각 10명 중 4명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해 몇 년 뒤면 농어촌 초등학생의 4분의 1이 국제결혼 부부의 자녀로 채워질 전망이라니 이제 더는 단일민족, 순수혈통을 내세워 자랑할 때가 아니다. 이들 대다수가 동남아시아에서 부푼 꿈을 안고 기회의 땅 한국을 찾아온 외국 손님들인 동시에 우리와 함께 산업사회를 이끌어 가는 소중한 일꾼이며 이웃이다. 주인인 우리는 그들이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적응하여 새 삶을 엮어 나가는 데 불편이 없도록 정신적·제도적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서 맨 처음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이다. 언어는 인간이 서로 교통하고 협동하는 기본적 수단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부부간의 결혼생활이며 시집 식구와의 교류, 직장에서의 작업수행이 원만히 진행될 리 만무하다. 종종 보도되는 외국인 아내에 대한 남편의 학대, 작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하는 폭력 등은 원천적으로 의사소통 부재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보편적 복지사회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외국인 언어정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우선 주민등록을 마친 모든 외국인은 스웨덴 국민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특히 그 나라 말을 모르는 외국 이민자들은 무상으로 700시간 스웨덴어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데 하루 6시간씩 총 6개월에 해당하는 긴 기간이다. 이 기간에 언어교육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회풍습, 직장생활에 필요한 소양교육까지 포함시켜 의사표현은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직장 일을 시작하게 한다. 교육기간은 휴직으로 인정되며 생활비는 고용주가 부담해 왔으나 1986년부터는 사회보조비로 충당한다. 그러니 생활 걱정 없이 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낯선 땅에서 새 삶을 순조롭게 차근차근 시작할 수 있다.

해마다 입국하는 베트남 신부만도 1만여명이나 되고 앞으로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는 더 심화할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좀더 잘산다고 해서 그들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가 힘들고, 위험하고, 지저분해서(이른바 3D) 기피하는 업종에서 저임금에도 불평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해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고마운 산업역군들이다. 도착 다음날부터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손짓 발짓 해가며 일을 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들은 싼 임금에 팔려온 노예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인정해주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외국인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한국어 교육을 각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아래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입국 후 단 몇 주일만이라도 기초 한국어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하면 생소하고 불안한 타국 생활을 훨씬 안정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업능률도 향상되고 의사소통 불량으로 일어나는 각종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길이 된다. 방법은 그 지역의 보조교사나 대학생에게 일정한 수당을 지급하고 저녁시간을 이용해 야학 형식으로 하며, 이에 필요한 예산은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외국인 정책의 일환으로 책정하면 될 것이다. 해마다 귀화하는 외국인 수도 늘어가니 이는 결코 타민족을 위한 낭비가 아니라 우리들의 새 가족에 대한 건강한 투자이며, 머잖아 시행될 인종차별금지법의 구체적 실천방안도 된다.

변광수/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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