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0.24 18:36 수정 : 2007.10.24 18:36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기고

지난 22일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상임위원회에서 아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부천시의 담당 공무원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불법체류자는 대한민국을 폭발시킬 시한폭탄’이라는 내용의 글을 낭독한 것이다. 이날 위원회는 부천시가 상정한 ‘거주외국인 지원조례(안)’를 다뤘다. 부천시는 행정자치부의 시달에 따라 이 조례를 제정하게 된 것인데, 이미 그 내용 때문에 민간단체와 큰 갈등을 빚고 있었다. 조례(안)에는 부천시에 거주하는 이주민에게 지자체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각종 행정 혜택과 한국어 교육, 법률·고충 상담 등 생활편의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바람직한 내용인데도 조례(안)에 민간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이유는, 지원을 합법체류자에게만 한정하여 제공하겠다는 단서 조항으로 말미암아 미등록 이주민이 원천적으로 배제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주민의 절반을 갈라 인권의 불모지로 내몰고 나머지 절반만 지원하여 반쪽짜리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것과 같다. 미등록 이주민의 대다수는 노동자다. 거칠고 고된 일을 감당하는 이들의 피와 땀이 밴 노동은 받아들여 지역사회의 성장동력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그 노동력을 제공한 노동자들의 인권은 외면하겠다니, 이처럼 파렴치한 짓이 또 있을까.

차라리 그런 조례가 없는 지금은 미등록 이주민도 최소한의 인도적 배려는 받을 수 있다. 미등록 가정의 아기들은 보건소에서 무료 예방접종을 할 수 있고, 미등록 이주민은 시의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차별적인 조례가 제정된다면 아기들은 보건소 문턱에서 쫓겨날 것이고, 한국어를 배우던 이주민은 교실 밖으로 내몰릴 것이다.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차별하지 말고 필요한 지원을 하여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가 이리도 경직된 데 비해서 오히려 중앙정부는 차별 없이 지원을 펴고 있다.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여 권리를 구제하고, 법률관리공단도 미등록 이주민에게 무료 법률지원을 한다. 교육부는 미등록 가정의 자녀에게 공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보건복지부 또한 응급의료비를 동등히 지원하고 있다. 만약 지자체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해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마저도 거부한다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엄청난 행정적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민간단체가 ‘미등록 이주민을 아우르는 차별 없는 조례’ 제정을 주장하며 맞서니 부천시는 몹시도 다급했던 모양이다. 그처럼 사실관계도 분명치 않고, 누가 써서 뿌리는지도 모르는 천박한 인종차별적 욕설을 공개적으로 낭독했으니 말이다. 일부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위원장에게 낭독을 제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위원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공무원은 “그들은 범법행위를 해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위원들은 그 짬짜미에 흥이 났던지, 이번 임시회에서는 일단 보류하고 차근히 논의할 기회를 갖자는 민간의 간절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조례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본회의에 올려버렸다. 더구나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지원은 종교단체와 시민단체에 떠맡기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나름의 이상과 의지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를 정부의 하부 조직으로 여기는 무지한 발상이 아닌가.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부천시와 시의회,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시한폭탄이다.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