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26 18:05
수정 : 2007.10.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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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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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교수 면담을 기다리던 나는 복도에서 펑크 스타일의 독일 남학생과 함께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 친구가 신문을 읽다 말고 노동정책에 대한 보수정당의 견해를 신랄히 비판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렇다. 젊은 세대들의 탈정치화 경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 독일 친구 녀석도 틀림없이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다.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할 법한 이 친구가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서구의 정당정치는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된 정치판과, 유권자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 계층 및 계급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다. 이 두 요소로 말미암아 시민들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은 왜곡되지 않고 이념적으로 각 정당에 투영된다. 이 독일 친구도 아마 노동계층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유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과거 우리의 선거는 ‘고무신표’, ‘지역몰표’, ‘동정표’ 등과 같은 ‘눈먼 표심’에 적잖게 휘둘리곤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선거는 서구 정당처럼 표방하는 이념과 정책에 따라 지지가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상황의 주된 원인은 왜곡된 정당구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자신이 처한 직업적 배경이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한다.
대선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특정계층 및 계급의 이해에 확연히 기우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도 모든 정당은 한결같이 ‘서민경제’와 같은 구호를 내걸거나 ‘민심장정’을 연출하면서 그 어떠한 정책적 차별도 숨긴다. 정작 각 후보의 공약이 지나치게 특정 계층이나 계급으로 기우는데도 그 당파성은 은폐되거나 혹은 유권자들로부터 냉정하게 검토되지 않는다.
이른바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나 ‘중등학교 평준화 폐지’가 지나치게 재벌 중심적이고 중산층 이상의 자녀에게 유리한 정책인데도 정치적 선호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고 ‘자사고’ 설립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겠다는 어느 대선 후보의 정책에 대한 찬성률이 50%가 넘는다는 여론조사는 당황스럽다. 고교 평준화 폐지를 두고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과 학교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학부모의 ‘헌법적 자유와 권리’는 곧 허구임이 드러난다. 교육의 다양성 추구와 학교 선택권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입시교육에서 성공’이라는 학부모의 ‘단일한’ 욕구로 수렴된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교육정책이 자기 자식의 교육에 어느 정도 유리한지에 대한 이해득실이 이 조사에 잘 반영된 것이라면, 우리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분명히 80 대 20의 사회이다.
마찬가지로 재벌이 금융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국제적 표준이라는 허구적 논리에 매몰된 채, 우리 적지 않은 서민들은 금산분리를 완화하면 경제가 회복될 줄 믿고 ‘지금보다 경기가 좋아져 내 가정생활도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동경을 한다. 중요한 것이 서민금융에 유리하냐 그렇지 않으냐인데도 말이다. ‘강남 사람은 계급의식이 있는데, 강북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주장이 그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선거에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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