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29 18:53
수정 : 2007.10.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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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렬/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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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는 1965년 중위 시절, 맹호부대 소총중대 요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죽음을 넘나드는 전투를 경험한 바 있다. 정글을 누비며 월맹 정규군과 맞싸웠던 두코 전투, 적전 야간행군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전했던 맹호5호 작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한번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는 그런 불타는 애국심을 가지고 전투에 임한 적은 없다. 주어진 임무를 그냥 최선을 다해 수행했을 뿐이다.
박정희 정권은 ‘맹호부대 용사’ 노래까지 만들고 모든 언론을 총동원해 침이 마르도록 파병의 당위성을 찬양·선동했고, 일각에서는 미국이 벌인 불의한 침략전쟁에 끌려간 용병이나 다름없는 군대라 비아냥거렸지만 우리 전투원들의 처지에서는 어떤 이유로 참전이 결정되었던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장에 나왔으니 열성을 다해 용감히 싸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만약 전사를 했다면,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가 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어떤 성격의 전쟁이었느냐에 따라 죽음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쳤다는 이유 때문에 동서고금 어느 나라든 국가는 정성을 다해 그들을 예우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성우회 등 일부 예비역 고급 간부들이 서해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장병들의 전사의 의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 화해정책 반대 집회로 표출하는 그들의 행태를 통렬히 개탄하는 바다. 전사자들의 위대한 죽음에 군더더기의 사족을 붙여 들먹이는 그런 정치성 짙은 주장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옷깃을 여며 경건하게 받들어야 할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전쟁 불사’라는 호전적 언동으로 흔드는 작태에 대해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친일 독재에 뿌리를 둔 일부 군 고위직 예비역들과 보수신문들은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 걸고 반대하며 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나라의 장래야 어찌되든 부하 장병들의 생사가 어떻게 결정되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만 집착하는 서글픈 모습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 야기된 서해 교전 사건 때도 그들은 전쟁불사만 외쳐댔다. 평화지향적인 전략적 판단을 통해 정상적으로 지휘 조처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즉각 밀어붙여 충돌을 부추기고자 안달이 나 있었다. 과거 우리 군은 위로 갈수록 권한만 크고 책임은 늘 생략됐다. 문제가 발생하면 문책은 항상 아래로만 향했다. 선수를 쳐서 아랫사람을 크게 처벌함으로서 혹은 대대적으로 칭송함으로서 윗사람들의 책임은 늘 면제돼 흐지부지되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부하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최우선으로 노력해야 하건만, 일제 군대문화의 영향을 받아선지 우리 병사들의 인권과 인격, 생명의 고귀함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전사자들이 우리를 향해 뭐라 하겠는가? “진정으로 부하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군대를 만들라!”고 하지 않겠는가? 앤엘엘 때문에 희생당하는 군인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남과 북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화지대 설정에 대해 참 좋은 생각을 했노라고 칭찬하고 있을 것이다. 왕년의 기라성들은 자숙해야 한다.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면서 비식거리며 빨갱이 타령을 하며 악을 쓰던 모습에 국민들은 식상해 있고 극도로 불신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나라 위해 스러진 용사들의 죽음까지 냉전 고수의 반평화 반통일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추한 작태를 보이지 않기 바란다.
표명렬/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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