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13 18:08
수정 : 2007.11.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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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상/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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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0만 고려인의 나라, 제2의 중동으로 떠오른 중앙아시아 다섯 나라 외교차관 일행들이 한꺼번에 한국을 찾아온다. 11월15일 외교통상부가 주최하는 ‘제1차 한-중앙아시아 협력포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중앙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인도·브라질 등 브릭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카자흐스탄의 높은 경제성장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중앙아시아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과거 비단길 문화의 중심지이고, 무엇보다도 70여년 전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17만 고려인이 지역민의 따뜻한 배려 속에 제2의 삶을 살아온 터전 아닌가. 1991년 옛소련 해체 이후 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 연해주와 볼고그라드, 남부 우크라이나 등지로 떠났지만 지금도 중앙아시아는 30만 고려인의 조국이다.
‘88 서울올림픽’으로 한국의 존재를 알게 되고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힘을 확인한 중앙아시아 사회는, 지금 <올인>과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이어지는 한류 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고려인뿐만 아니라 우즈베크인, 카자흐인 등 현지인들도 그러하며, 또 그 중심에 청소년들이 있다.
지난 4월 고려인 청소년을 연구하러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의 세종한글학교(교장 허선행)를 방문했다. 91년에 세워진 사설학원에 무려 450여명의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우즈베크 청소년도 상당수였다. 타슈겐트 니자미사범대 한국어문학과와 동방대 한국어과 학생들 중에도 우즈베크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과거 고려인 학생들 일색이던 우즈베크 대학의 한국어과에 이제는 20∼30% 정도가 현지인 학생이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재외동포를 넘어 현지인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국어의 세계화와 한국문화가 글로벌 문화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크 대학의 한국어과에는 한국의 대학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에서 파견한 교수들이 한국어 회화와 한국문화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과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지원한 한국어 교과서와 사전 등 다양한 교재와 컴퓨터 기자재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한국어과 교수들과 고려인, 현지인 학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365일 스물네 시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는 가칭 한국문화정보센터다.
경기문화재단의 효·가족문화 영상콘텐츠 공모전에 우즈베크 고려인 학생들의 작품이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입상했다. 참여 학생들은 100만원 상금 중에 극히 적은 일부만 몫으로 나누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했다. 디지털 캠코더를 사기 위해서이다. 한국인 유학생의 낡은 소니(TRV-40) 카메라 한 대로 단편영화와 다큐를 제작했고, 또 사용자 손수제작물(UCC)도 제작중인데, 카메라가 더 없는 게 아쉽다고 한다.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한국문화정보센터가 우선 우즈베크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한국어과 개설 대학에 세워진다면, 그리고 정보기술(IT) 서포터스 운동을 펼치는 케이티, 복합문화 공간 상상마당을 펼치는 케이티앤지, 아시아 지역 청소년에게 특별장학금을 주는 포스코 등 한국의 유관 기업들과 엔지오가 후원하는 한-중앙아시아 청소년 영상캠프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다면, 30만 고려인의 나라 중앙아시아와 한국은 동반자 아시아의 정신으로 ‘한류’를 넘어 ‘아시아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임영상/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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