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15 18:14
수정 : 2007.11.15 18:14
|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전문위원
|
기고
우리 사회는 근로빈곤층이 증가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가 ‘사회적 위험’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부양하는 노인과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자녀들을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빈곤의 증폭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빈곤이 실업·질병 등으로 생기는 경제적 박탈에서 비롯되었다면, 근로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일하는 것만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2006년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은 1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빈곤율이 높은 국가군에 속하는데, 이 중 근로빈곤층이 약 58%에 이른다.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빈곤층의 특성은 첫째, 항상 빈곤한 것이 아니라 빈곤의 진입과 탈출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003∼2005년 1분기 이상 빈곤을 경험한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인 반면, 계속 빈곤한 가구는 4%에 불과하다. 두번째 특징은 저학력·저숙련 등으로 바로 시장 진입이 어려운 계층, 비정규직 등 불안정 취업자, 영세 자영업자 등 근로빈곤층이 이질적 유형으로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증가 추세에 있는 근로빈곤층 지원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자활사업, 최저임금, 실업급여,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사회적 일자리 및 근로장려세제 등이 여러 부처에 걸쳐 시행 중이거나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자활사업은 공공부조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에 머물러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빈곤문제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정책과 근로장려세제 또한 임금근로자 위주의 정책이어서 근로빈곤층의 상당수는 애초부터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근로빈곤층 지원대책은 다음 세가지 기본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빈곤정책은 과거 근로능력 없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넘어 근로빈곤층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소득 위주의 전통적 복지정책을 내실화하면서 근로빈곤층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 등 예방적·적극적 사회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복지를 투자라는 관점에서 재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근로빈곤층은 이질적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원책 또한 특정한 하나의 제도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복지정책, 고용정책, 조세정책 등 관련 정책 간 융합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활급여법 제정은 그 의미가 높다. 이 법안은 근로능력이 낮아 바로 취업하기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생계비 형태의 직접적인 현금지원보다는 자활역량을 길러 가급적 일하도록 하여 빈곤을 탈출하고 빈곤을 예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과거 단편적인 서비스 제공에서 벗어나 빈곤 진입과 탈출 경로, 가구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관련 서비스를 통합하여 집중 제공함으로써 이른 시일 안에 빈곤 탈출을 돕게 된다. 아울러 지역사회 주도의 사업을 추진하고, 사업 수행기관을 다양화·전문화하고 성과계약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점은 그동안 지적받아 온 자활제도 자체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도 기대할 만하다.
근로빈곤층 문제는 국가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만큼 어렵고 새로운 국가적 어젠다이다. 따라서 근로빈곤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관련 제도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전문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