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0 18:45
수정 : 2007.11.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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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걸/한국전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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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 10월18일, 경복궁내 건청궁이 일제 때 철거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일제 자객들에게 시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부국강병으로 만들고자 한 고종황제의 근대화 현장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이 밝혀졌다.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한 지 불과 8년, 중국과 일본의 궁성보다도 2년이나 앞선 1887년의 일이다. 이후 고종은 황실자본으로 지금의 한국전력의 모태가 되는 한성전기를 설립하고 전기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우리나라에 교통혁명을 가져온 첫 전차가 운행됐으며, 일반 시민을 위한 첫 가로등도 밝혀졌다.
전기는 현대인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컴퓨터 작업과 밥을 짓는 일상 소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생활이 전기로 이루어진다. 조작의 편리성과 빛·열·동력 에너지로 쉽게 전환되는 효용성은 인간생활 전반에 걸쳐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놓은 것이다. 마치 물이나 공기가 없으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이제 전기가 없으면 단 1분 1초라도 문명화된 세상에서 살 수 없다.
전기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든든한 주춧돌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5·14 단전과 전란의 피해로 남한의 전력사정은 극도로 어려웠지만 장기 전원개발을 통한 지속적인 투자로 1964년 무제한 송전시대를 열었고, 이는 곧 국가 경제개발에 탄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오늘날 자동차·반도체·조선 등의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 것도 그 이면에는 저렴한 요금으로 양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우리의 발전설비도 6700만㎾를 자랑하는 세계 12위의 전력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흔히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냈듯이 전기의 소중함 역시 잊고 지내 왔다. 지난해 원유·천연가스·우라늄 등 에너지 자원 수입액은 856억달러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전체 우리나라 수입 금액의 4분의 1과 맞먹는 것으로 그만큼 에너지 다소비국이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산업현장에서는 물론이고 개별 가정에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우선, 에너지 절약에 국민 모두 나서야 한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산업구조를 좀더 효율·절약형으로 개선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도 에너지 절약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진부한 표현일는지 모르지만 거창한 구호나 제도보다는 사용하지 않는 코드는 뽑아 두고 엘리베이터에서는 잠시 기다릴 줄 아는 생활의 지혜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이 자원고갈과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우수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전력산업에서도 우수인력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전력은 초전도를 이용한 차세대 송전기술을 비롯하여 화석연료를 대신할 수소 연료전지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과 전력 정보기술(IT)과 같은 관련 산업과의 융·복합 기술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여 미래의 수익 창출원 확보에 전력을 쏟고 있다. 미래의 전력산업에는 고급 두뇌의 창조적인 역량이 절실하다고 볼 때 이는 매우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가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고 자랑이듯이, 120년 전 건청궁의 불빛으로 시작한 우리 에너지·전기에 대한 소중함을 고유가 시대에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원걸/한국전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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