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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9 18:14 수정 : 2007.11.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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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53조에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입법부가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무원의 위법행위를 탄핵소추권을 통해 견제할 수 있는 반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입법부에 대한 유일한 견제수단이다. 우리 헌법의 명시적 규정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 쓰임이 지극히 조심스러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정치지분 얻기에만 골몰하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표밭 다지기용으로 광활한 지역을 낡은 개발주의 광풍으로 몰아넣는 이 상황에선 조심스런 마음을 접어놓고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며칠 전 오랫동안 숙의 끝에 사회적 공감을 얻어 멀쩡하게 작동하는 일반법들을 일거에 짓눌러 버리고 우리 사회를 급속하게 과거 개발독재 시절로 회귀시키는 입법부의 반사회적 행태를 지켜봐야 했다. 이제 이를 되돌리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때라고 본다.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이 규정하는 범위는 동·서·남해안에 접한 전국 73개 시·군·구가 포함되는데, 면적으로는 국토의 29%에 해당된다. 그 안에는 한려해상, 다도해해상, 지리산, 설악산, 변산반도, 오대산, 경주, 태안해안 등의 국립공원을 포함한 자연공원 29곳과 서·남해 섬 전체를 포함하고 있어 가장 한국적인 경관과 가장 중요한 생태계를 동시에 품은 지역이다.

그런데 잘 지켜서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어야 할 그 넓은 공간을 각종 규제완화, 특례, 재정지원 등을 통해서 막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이다. 국토를 계획적이고도 보전적으로 관리하고자 만든 국토계획법, 자연공원법, 연안법 등 일반법들은 무력화되고, 지방정부에서 세운 각종 개발공사들을 일사천리로 추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법은 연안 해양의 생태계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제한적인 수준에서 공공의 이익을 지켜오고 있는 법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현재 지방의 개발욕구는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으로, “지방의 의사결정에서 개발주의로 말미암아 환경적인 고려가 너무 자주 무시되는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한국 환경성과 평가보고서’가 생생하다. 그런데 전국토의 29%인 해안지역을 건교부 장관과 지방정부에 넘겨주었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이제 곧 나머지 70%인 내륙에서 내륙권발전 특별법을 만들자고 나서면, 전국이 막개발 도미노 현상을 보일지 모른다. 과연 수천년 존재했고, 40년 동안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던 곳들조차 개발해야 하는 시급함이 있었던가? 지금은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다.

28일 새벽, 여수세계박람회 유치 낭보가 날아온 데는 환경의 중요성을 일갈한 프리젠테이션이 주효했다는 후문이 있다. 또 내년에는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총회가 경남에서 열린다. 이 두 대규모 국제행사를 한국이 유치한 것은 나라의 이름으로 환경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적으로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유치해 놓고 대대적인 습지파괴 제도를 만들고 있으니 이만저만 망신거리가 아니다. 나라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과연 원칙과 양심은 동의할 수 있는가?

오성규/환경정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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