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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2 18:39 수정 : 2007.12.12 19:43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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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너무 재미없다는 푸념이 늘고 있다. 온갖 비리 의혹과 갖은 검증 공방에도 끄떡하지 않는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 독주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후보직을 포기해야 했을 창피한 비리 사실에도, 희대의 사기꾼과 한참 동안 동업을 했다는 의혹에도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다. 일반적으로 선거를 앞둔 유권자의 선택은 지난 시기 공과를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와 미래를 기대하는 ‘전망적’ 투표로 구성된다. 이명박 후보의 가공할 만한 지지율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전망적 기대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어 있는 광범위한 반노무현 정서와 진보 진영에 대한 염증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금의 국민정서를 진보 진영은 엄연한 현실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이 없다며 국민을 원망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실 진보 진영이 뭘 그리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민주주의와 개혁과 평화라는 정책방향은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옳은 목표를 가졌다고 그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정책과 방향은 옳았지만 추진방식과 언행이 국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포용과 연대보다 자꾸만 편을 가르고 차이만 들춰내는 분열과 선긋기에 익숙하지 않았는지,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독선은 없었는지 곰곰이 돌이켜봐야 한다. 정의와 진실은 주장만으로 승리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동의할 때 정의와 진실은 주장을 넘어 현실로 실현된다.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지속되고 이회창 후보가 출마선언 직후 단번에 지지율 2위에 오른 날, 진보 진영은 스스로 통절한 자기반성을 시작했어야 했다.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삼보일배의 마음으로 각고의 참회에 나서야 했다.

그렇다고 보수 진영이 마음 놓을 때는 아니다. 이제 진보는 사라졌다며 구보수와 신보수의 보-보 대결을 희망하면서 보수 선명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 보수에게 쏠린 국민의 지지는 진보에 대한 반감의 반사이익이지 보수 자체의 정당성 때문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그 본류로 하면서 진보는 대한민국을 부끄러워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유력 일간지의 고문은 자신의 칼럼에서 보수의 가치를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신뢰,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정리했다. 보수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누구도 대한민국의 자랑찬 역사를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진보 역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와 현실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너무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 안에는 부끄러운 부분도 존재한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해낸 우리의 역사지만 인권탄압과 정경유착과 군사독재와 정적살해와 양민학살까지 통째로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역사를 신뢰하라고 주문하는 보수 진영에는 과거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주도했거나 개입했거나 동조했거나 묵인한 흔적이 남아 있다. 혹시나 진보 박멸의 지금 시대에 자신의 잘못마저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회칠하고 싶은 걸까.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마저 거부하고 명백히 부끄러운 행동을 올바른 것이라 주장한다면 이는 분명 수구일 뿐이다. 한국 보수의 가치는 그래서 아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목표와 가치는 옳을지언정 행동과 방식이 그릇되었던 진보는 이제 진지한 자기 반성에 나서야 한다. 지금 민심을 얻고 있지만 과거의 잘못까지도 옳은 것이라 강변하는 보수 역시 수구의 길을 넘어서길 바란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보와 보수의 진정한 대결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 대선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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