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4 18:21
수정 : 2007.12.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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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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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나라 30∼40대 전업주부가 가장 힘세다는 뉴스(<한겨레> 12월12일치 14면)를 얼핏 보고 나선 출근길,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그것을 다시 들었다. 남자는 20대 이후로 근력이 떨어지는 데 비해 여자는 30대·40대에 더 세지며, 전업주부의 경우에 더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남성 진행자는 이러고 보면 매맞는 남편 이야기도 이해할 만하다고 했다. 웃자고 하는 말(?)에 실소만 날렸다.
우리 가족의 생활근력을 평가하면 시어머니>나>딸>아들>남편>시아버지 차례일 게다. 눈 덮인 피난길, 포대기로 싸 업고 간 ‘핏덩어리’ 아래로 여섯을 더 낳고 기른 70대 할머니> ‘다 모이면 딱 서른 명’ 시집의 외며느리로 가히 설거지 달인의 반열이 멀지 않은 40대 아줌마> 비좁은 학교에 꾸겨박힌 어린 청춘들이 손쉽게 즐기는 놀이 몸통박치기에 단련된 여중딩> 분리수거 3년차를 앞두면서도 일할 때마다 각종 신음소리와 해프닝으로 ‘나는 아직 어리잖아요’와 연약함을 호소하는 남초딩> ‘어줍다’는 이유로 엄마에게서 일체의 일을 면제받은 30여년의 전성기를 ‘이후로도 오랫동안’ 꾸역꾸역 이어가려 몸부림치는 40대 아저씨> 지난 15년간 축적된 데이터에 무엇을 드는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아 근력 판단 불가의 팔순 할아버지.(열외)
가사분담이라는 남녀의 영원한 싸움터에서 우리나라 남성은 압승을 거두고 계시다. 취업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과 취업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28분’ 대 ‘32분’이다.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면 가사 분배에 어떤 원칙이 있을 수 있을까? ①덜 버는 쪽이 가사일을 많이 한다. ② 임금 노동 시간이 짧은 쪽이 가사일을 많이 한다. 이런 기준은 공평한가? 그렇다면 전업주부의 경우는?
밖에서 힘들었으니 손 하나 까딱 않겠다는 자세는 공적인 정의로움에는 어떨지 모르나 애정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정에는 맞지 않는다. 바라건대 모든 가정은 공동체적인 마음 가짐에서 가사일이 ‘힘든 일’임을 인정하고 모두 돌아가며 해야 한다. 놀라지 마시라. 말 그대로의 순번제를 요구할 뱃심을 우리나라 주부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강조할 것은 가사노동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기꺼이 나서서 하기 꺼려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논의가 무색하게 ‘엄마가 직접’이란 문화압력은 또 얼마나 강한지. 그러고 보면 가사노동은 엄마 사랑이 중요한 ‘감정노동’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감정’노동이면서 감정‘노동’이다.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 애정어린 포옹, 중요하다. 그러나 말로만 되는 엄마 노릇 없고 정서적 지지만으로 되는 아내 노릇 없다. 말과 감정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함으로써 진정성이 보증된다. 주부들은 4㎏에서 시작해 10㎏이 넘는 아이를 수시로 안고 업는다. 장바구니에 담긴 파와 새우깡만 드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큰 놈으로 고른 무와 배와 고구마도 든다. 김치냉장고의 김치통, 스타킹과 엉켜 한몸이 된 빨랫감, 되게 무겁다. 저녁 한끼나마 공장음식 아닌 부엌음식으로 ‘잘먹고 잘살게’ 해 주려면 서너 시간은 꼬박 서서 돌아쳐야 한다.
아니 뭐 엄살 부리자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의 ‘밥벌이의 지겨움’ 아니 밥벌이의 고난, 안다. 다만 남자들이 얼마나 당당히 혹은 요리 빼고 조리 빼며 몸보신을 하셔서 이렇게나 근력이 달리는지 ‘늬우스’도 나온 김에 걱정과 위로 한번 해 보자는 얘기다. 누구 말대로 굵어진 팔뚝에 얻어맞기 전에 그 팔뚝 덜 굵어지게 해주심이 어떠하올지. *팁 하나-여자들은 ‘젖은 손이 애처러워’ 잡아주(기만 하)는 손보다는 소파 치우고 청소기 미는 손을 더 사랑한다.
김미영/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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