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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05 21:17 수정 : 2008.02.06 01:06

김일승/<영어발음 웃기고 있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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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공교육 개혁 ‘드라이브’로 온 국민이 들썩이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나라의 영어 공교육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인수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설 즈음엔 완성도 있는 계획이 꾸려지길 바라며, 그 시행의 결과가 부디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분히 와닿을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에서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이른바 ‘오륀지 발언’은 나의 머리를 갸우뚱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에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었지만 ‘오륀지’라고 하니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Press-friendly’ 했더니 ‘프레스 프렌들리’라고 적더라는 것이다. 물론 ‘l’ 발음과 ‘r’ 발음, ‘p’ 발음과 ‘f’ 발음 구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임은 알겠다. 하지만 이런 것을 ‘영어 표기법’ 문제로 결론지은 점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을 수정·보완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발언은 말 그대로 ‘어폐’ 그 자체일 뿐이다.

영어 발음의 우리말 표기법 하나로 우리의 영어 발음이 개선된다면, 이경숙 위원장은 대한민국 영어 발음 교육에 한 획을 그을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기법만으로 ‘한 획’을 기대하기엔 무리다. ‘패션’을 ‘훼션’으로, ‘티쳐’를 ‘티쳘’로, ‘댕큐’를 ‘생큐’로 우리말 표기법을 바꾸어서 대한민국 국민의 영어 발음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한글 표기법과 영어 발음과는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알파벳으로 구성된 영어에서 발음 원천은 다름 아닌 ‘영어 발음기호’다. 미국인이 발화하는 각각의 영어 발음기호를 얼마나 그와 유사하게 익혔느냐에 따라 영어 발음의 좋고 나쁨이 사실상 판가름 나는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표기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글’인 이상, 결국 우리 입에서는 ‘우리말’이 바탕에 깔린 영어 발음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렌지’를 ‘오륀지’로 발음했더니 미국인이 알아먹었다고 해서 동영상으로 그 ‘오륀지’ 발음을 직접 들어 보았는데,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역시 ‘ㅣ’ 모음을 끝에 붙여서 발음하고 있었다. 미국인이 잘 알아듣지 못했던 이유는 ‘오륀지’를 ‘오렌지’로 발음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r?n?]로 발음해야 할 것을, 단어 끝에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붙이는 한국식 모음발음(ㅣ)를 붙여 [?:r?n??]로 발음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음+모음’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발음기호엔 없는 모음을 끝에 붙여 발음을 마무리하려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에서 어쩌면 가장 개혁하기 어려운 부분이 ‘영어 발음’ 분야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어 발음 교육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심도있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이 우리나라의 영어 발음 공교육 문제도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간단히 ‘영어 표기법’의 문제로 결론짓는 것은 인수위의 큰 오류다.

김일승/<영어발음 웃기고 있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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