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5 19:16
수정 : 2008.02.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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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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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남 태안에서 삼성중공업 예인선단이 유조선을 들이받아 시퍼런 청정바다를 시커먼 기름바다로 죽이더니, 곧이어 경기 이천에서는 냉동창고에서 화재사고가 나서 무려 40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다시 탐욕에 눈멀고 사회적 불만에 사로잡힌 한 노인의 방화로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었다. 정권교체기의 참담한 대미인가, 불길한 시작인가?
세 사고는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위험사회에서 사는지를 잘 보여준다. 학교에서는 자연·인명·역사 등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가르치지만, 이 나라의 실제 생활에서는 모두 하찮게 여겨지고 있다. 그저 더 많은 돈을 향한 끝없는 경쟁이 날이 갈수록 악화될 뿐이다. 그 결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돈을 쌓은 자들이 권력까지 움켜쥐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야흐로 나라 전체를 대재앙으로 몰아넣으려 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태안의 불행이 해소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원봉사의 기적’으로는 태안의 불행은 해소될 수 없다. 아니, 사실 어떤 노력으로도 태안의 불행은 풀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태안의 불행을 줄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한 노력을 한시바삐 서둘러야 한다. 그 핵심은 졸지에 생계 터전을 잃고 생존의 기로에 놓인 태안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태안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의 기적’은 하루빨리 ‘태안 지원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
무참하게도 지금 태안은 세번째 죽음의 고통을 이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007년 12월7일 태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름유출 사고로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2008년 1월 하순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자신의 책임을 발뺌해서 다시금 태안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2008년 2월13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는 ‘태안 지원 특별법안’ 심의를 거부해서 또다시 태안을 죽음의 고통에 빠지게 했다. 삼성에 이어 국회마저 주민의 고통에 눈을 감은 것이다.
국회에서 ‘태안 지원 특별법’ 논의가 시작된 것은 사고가 발생하고 엿새 뒤인 2007년 12월13일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만 두 달이 지난 2월13일 국회 농해수위는 18일에 공청회를 하겠다며 ‘태안 지원 특별법안’ 심의를 거부했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국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절대 제정하지 말라는 개발 특별법은 속전속결로 제정하더니 정작 절박한 지원 특별법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사코 제정하지 않는가? 태안 주민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 수만명의 태안 주민은 삼성중공업의 사고와 발뺌으로 이미 극단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국회는 태안 주민을 지원하고 태안 바다를 되살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하나는 삼성중공업을 위해 뜨거운 여론이 식을 때까지 지연작전을 펴고 있다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선에서 쟁점으로 삼고자 정당들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라면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이 모양이니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손꼽는 위험사회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태안 지원 특별법안’을 두고 국회는 18일에 공청회를 열고, 이어 농해수위·법사위에서 심의한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의지를 보여 20일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을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비협조적인 정당과 의원은 국민의 이름으로 엄중히 심판받을 것이다. 자원봉사의 기적을 일으킨 국민이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
홍성태/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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