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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0 20:05 수정 : 2008.02.20 22:05

김형근/(사)유엔미래포럼 선임미래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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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인가?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거머쥔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에게는 그렇다. 이 말은 지난 대선 기간 어떠한 모토보다도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아마 4월 총선에서도 또다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이 겪었던 경제불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인가? 해답은 일본이 세계경제라는 국제시장에서 일본의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경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인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저 ‘경기불황 10년’이라는 말이나 ‘경쟁력 상실 10년’ 정도로 표현하면 된다. 그런데 뭘 그렇게 거창하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아주 비장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가?

‘잃어버린’ 것과 관련하자면 우리나라에는 <잃어버린 30년>이 있다. 트로트 가수 설운도가 부른 노래 제목이다. 1980년대 초다. 입국이 금지됐던 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서울을 방문해 이산가족을 만나 상봉하는 슬픈 상황을 표현한 노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30년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과 1980년 사이의 간극을 말한다.

한국의 ‘잃어버린’ 것과 일본의 ‘잃어버린’ 것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빼앗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30년은 한국전쟁으로 북한에 빼앗겼다는 의미도 되고, 또 주변 강대국들에게 빼앗겼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상봉할 때까지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안타까운 세월 30년이 우리의 ‘잃어버린 30년’이다.

그러면 일본의 ‘잃어버린’ 속에서는 무엇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신과 혼이다. 사무라이의 정신과 혼을 중요시 여기는 일본은 과거 10년 동안 그들의 모든 것을 미국에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평론가들은 10년 동안의 경제불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이유가 일본의 고유한 정통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독특한 경영문화와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미국식을 따르다가 완전히 낭패 봤다는 것이다.

일본의 10년은 1990년대부터 시작돼 2000년대까지 계속된 경제불황 기간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체질은 결코 일본에 맞을 수 없다는 반미정서와 국수주의도 자리잡고 있다. 보수우익 논객들의 주장이다. 덧붙이자면 고유한 경영문화, 종신고용제와 집단주의를 빼앗긴 기간이다.

이제는 일본 방식대로 가자는 이야기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나 이제는 그 불편한 옷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최근 일본 경제가 점차 회복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미국 방식을 멀리하고 일본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세계를 제패했던 파나소닉, 도요타를 비롯해 소니와 아이와의 신화가 무참히 무너진 것은 이 ‘잃어버린 10년’ 기간이었다.

일본의 혼을 재건하려는 ‘잃어버린 10년’은 물 건너 오면서 이상하게 변질됐다. ‘잃어버린 10년’은 경제불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정권을 쥐지 못한 그러한 아쉬운 10년도 아니다. 정신과 혼을 잃어버린 기간이다.


영어 모국어화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영어정책을 밀어붙이고, 심지어 과거청산 관련 위원회를 모두 통폐합하려고 하는 대통령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일본 보수논객들의 이 비장한 ‘잃어버린 10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마 총선에도 다시 쓸지 모른다. 더는 사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형근/(사)유엔미래포럼 선임미래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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