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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07 21:13 수정 : 2008.03.11 11:56

김형근/(사)유엔미래포럼 선임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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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과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름값은 왜 오르는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달리기 때문에? 그 정도면 중·고등학생도 안다. 중동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맞기는 하지만 대학생 정도의 순수한 아카데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급부상하면서 석유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순전히 일화다.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여세를 몰아 이라크 공격을 개시했다.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자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비난이 들끓었다.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알리기로 결정한 대통령은 침공 이유에 대한 초안을 대충 쓰고는 비서에게 정리하라고 명했다. 글을 정리하던 비서가 하도 이상하게 생각해서 물었다. “우리가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왜 710가지나 되도록 그렇게 많습니까? 줄여야 될 것 같은데요?” 그러자 대통령은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요? 710가지나 된다고요? 아닙니다. 나를 잘 알지 않소? 난 원래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인 사람이오. 내가 이라크 침공을 지시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밖에 없소.”

비서가 다시 물었다. “그러나 초안에는 710가지로 나와 있는데요?” 원문을 확인하고 난 부시 대통령이 하는 말 “아, OIL이 둔갑해서 710으로 됐군. 어떻게 해서 OIL이 710으로 변했나? 이상하군요. 당장 OIL로 고치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가 있으면 석유를 뜻하는 영어 대문자 OIL(오일)을 뒤집어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OIL이 710으로 보일 것이다. 어떤 만화가의 재치로 부시 대통령의 석유에 대한 집착을 풍자한 이야기다. 지난 10월 한국을 방문한 한 미래학자가 들려주었다.

기름값을 올리는 것은 미국의 의도이라는 주장이 있다. 다시 말해 원유시장을 일부러 교란시키면서 기름값을 조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막강한 힘을 업고 있고, 대통령 자신도 정유업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안중에 넣고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주장이다.

2006년 서울을 방문한 당시 다우코르 석유수출국기구(오펙)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당시 유가 상승과 관련해 이런 말을 전했다. “오펙은 세계가 쓸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유가 상승을 중동의 불안한 정세로 몰아붙이는 것도 옳지 않다. 정치적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중동이 불안하지 않은 경우가 언제 있었느냐? 유가 상승의 책임을 산유국에다 떠넘기지 말라. 충분하게 공급하고 있는데도 비난의 화살이 날라오는 게 상당히 불쾌하다.”

그는 기름값이 왜 오르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불합리한 시장 구조’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불합리한 시장 구조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오펙은 생산에만 책임질 뿐 시장에 내다파는 것은 미국 메이저들의 몫이다. 2006년 한 해에만 미국 4대 메이저들은 기름값 상승으로 30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2001년 이후 기름값이 급상승했다. 불과 7년 만에 무려 네 배나 뛰었다. 차익이 엄청나게 나는 유가 상승을 미국 메이저들이 왜 마다하겠는가? ‘사우디 원유시설을 폭파하려고 했던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보이는 테러범 검거’라는 짤막한 외신 하나면 시장은 요동을 친다. 메이저들의 언론플레이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다우코르 의장의 주장처럼 오펙이 원유를 감산했다는 보도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상승이 미국의 의도적인 전략이든 아니든 간에 이렇다 할 묘책이 없다는 것이다. 있으면 좋으련만.

김형근/(사)유엔미래포럼 선임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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