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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1 21:46 수정 : 2008.03.12 00:34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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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공을 차다가 들어갈 종이 치자 아이들이 수돗가로 달려간다. 아이들의 등에서 머리에서 김이 난다. 아이들이 고개를 쳐들고 수도꼭지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물을 받아먹고는 얼굴을 씻고 나서 머리를 쏟아지는 물 밑으로 들이민다. 물이 아이들의 머리로 쏟아진다. 물이 찬지 한 아이가 물이 철철 흐르는 머리를 흔들어 댄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손사래를 치더니, 쏟아지는 수돗물을 손으로 때려 물장난을 하기 시작한다. 수도꼭지를 하나씩 차지하고 도망가고 쫓기며 물장난을 치자 2층 유리창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이 물장난을 멈추고 머리를 흔들어대며 교실을 향해 뛴다. 아이들 머리에서 물방울이 하얗게 튄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자 나는 내 자리로 들어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봄이 오는 강물은 늘 저렇게 애매한 색깔을 띠고 있다.

물, 나는 지난 월말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환경재단과 지구촌공생운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에서 캄보디아에 우물을 팠고, 그 준공식을 하러 간 것이다. 그곳을 다녀온 이후 나는 물을 보면 혼자 움찔움찔 놀라곤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보고 온 것이다. 캄보디아는 절대적으로 식수가 부족한 나라다. 환경재단의 후원으로 판 우물을 찾아 시골의 작은 마을까지 가는 동안 나는 그곳에서 우물 파주기 운동을 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물 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캄보디아는 지금 건기였다. 텅빈 벌판에는 하얀 소들이 드문드문 풀을 뜯고 있었고, 벼를 베어 낸 들판에도 소들이 하얗게 땅에 코를 박고 풀을 뜯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캄보디아 벌판은 키 큰 야자수들이 멋들어지게 자라고 있는 아주 평화롭고 복받은 땅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땅을 들여다보면 소들이 도대체 무엇을 뜯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땅은 메마르고 건조하며 풀이 보이지 않았다. 1센티미터도 안된 풀을 찾아 뜯는 소들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고, 마을 근처에서 들로 나와 먹이를 찾고 있는 닭이나 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하게 비쩍 말라 있었다.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소나 닭이나 개가 먹을 사료가 없어 그들 스스로 먹을 것을 그렇게 빈 들판에서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마을 가까이 가면 돼지들이 작은 웅덩이에서 오리들과 먹을 것을 뒤지고 있었다. 물은 파랗게 썩어 있고, 돼지와 닭과 오리와 소가 놀고 있는 물은 흙탕물이었다. 그 더러운 흙탕물을 사람들이 먹는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썩은 물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뭐하냐고? 거기에 나라는 없었다.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먼지 나는 시골길을 두 시간쯤 달려 샘을 파 놓았다는 작은 마을로 접어들었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 차가 다가가자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아! 나는 그 줄서서 박수 치는 모습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거기 어린 내가 있었던 것이다. 햇볕에 까맣게 탄 얼굴들, 초라하고 남루한 옷차림, 겁먹은 눈빛들, 개와 닭과 소가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줄 서 있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우물 속보다 더 깊고 까만 눈을 가진 아이들이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이 마당가에 있는 저 더러운 썩은 물을 먹고 사는 아이들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손을 잡아보고, 볼을 만져보고, 안아보며 나는 눈시울이 자꾸 더워져 왔다. 아이들의 얼굴은 참으로 순박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 판 우물물을 길어 보았다. 우리나라 샘물들처럼 맑지는 않지만, 맑고 깨끗한 물이 두레박을 따라 올라왔다.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은 좋아했다. 하루에 세 번씩 목욕을 한다면 웃는 동네 사람을 보며 나는 또 목이 메어왔다.

목숨을 가진 것들에게 물이 얼마나 절대적이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물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수없이 병들고 죽어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 부족으로 인하여 오늘도 이 지구촌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고 병들어 간다. 캄보디아에서 우물 하나를 파는 데 드는 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50만원쯤 된다. 50만원이 목말라 병들어 죽어가는 어린 목숨들을 살린다. ‘물먹는다’는 말이 그렇게나 절실하게 아름다운 말인지 나는 그곳에 가서 알았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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