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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4 20:38 수정 : 2008.03.14 20:38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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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발표한 5대 국정지표는 섬기는 정부, 활기찬 시장경제, 능동적 복지, 인재대국, 성숙한 세계국가다. 이 가운데 지난 대선 초부터 사용한 ‘섬기는 정부’는 이미 한나라당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로 쓰인 건물의 전면에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인쇄되어 걸린 바 있고, 대통령 취임에 앞서 방문한 국립현충원의 방명록에서도 재삼 확인된 구호였다.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에서 국민들이 과거와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 당연함이 국정지표가 되었다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누구로부터 섬김을 받을 것인가다. 예상해 보건대, 공공청사의 문턱이 낮아지고, 고압적이던 공무원들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구호에 걸맞게 움직여 언제 어디서나 국민이 어려울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일 터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공공서비스를 받으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대불국가산업공단에 입주한 기업인들이 산업 활동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청원한 전봇대 철거 요구가 오랫동안 묵살되더니 대통령 당선인의 관심 표명이 이뤄지자 꿈쩍 않던 전봇대가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장면을 바라보았던 국민은 국정지표 발표와 더불어 가시적인 다른 움직임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벤트라 하더라도 불편하던 전봇대를 기왕 뽑았으니 국민의 기대를 등에 업고 내친김에 한 가지 더 요구하고자 한다. 다름 아닌 공공청사를 출입하는 국민에 대한 호칭과 출입 방법이다. 정부의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일시적으로 공무원 신분이 아닌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도움을 기대하는 일이 있을 때 정부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일시 사역인부’라 하며, 공공청사를 방문하는 국민은 싸잡아 ‘민원인’으로 호칭한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우람한 공공청사의 후미진 곳에 마련된 ‘쪽문’으로 드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고,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폭력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의 중심부인 서울, 그것도 세종로 1번지로 명명된 정부중앙청사만 하더라도 국민은 언제나 청사 뒷골목을 통해 경비가 삼엄한 쪽문으로만 청사에 드나들 수 있다. 과천 정부청사나 각급 지자체의 우람한 청사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청사를 찾는 국민은 왁자한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주눅이 든다. 고압적인 자세에 눌려 비좁은 주차장을 몇 번이나 돌아 억지로 차를 세우고 관리소에 들러 신분증을 맡기고 누구를 왜 만나야 하는지를 기록한 후 청사 안에서만 쓰이는 명찰을 달고 나서야 비로소 한적한 청사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다. 공공이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자 찾는 사람이라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들만의 법칙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집무실 가까이까지 방문객들이 더욱 자유롭게 다녀갈 수 있도록 개방 범위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을 내어 청와대 주변을 다녀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화급을 다투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일하는 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여유롭게 만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보다는 바쁜 일상을 이겨내며 먹고살 일 때문에 공공청사를 찾는 대다수 국민이 좀더 편하게 공공서비스를 받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일 것이다.

국민은 더는 민원인이나 일시 사역인부로 불리는 것이 싫다. 번듯한 마당을 멍하게 쳐다보며 후미진 골목의 쪽문으로 드나드는 일도 이제 싫증이 났다. 깔끔하게 마련된 정문에서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먼저 묻는 공무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자랑스럽게 공공청사에 출입하고 싶다. 그래야 두 번째 국정지표로 올려진 활기찬 시장경제도 실현될 수 있다. 섬기는 정부가 해야 할 두 번째 이벤트다.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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