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1 20:31
수정 : 2008.03.2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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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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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다. 인구 증가 및 산업활동에 따른 물 오염과 부족이 심화되자 물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1992년 유엔에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정부와 엔지오 등이 협력해 물 절약 운동, 정화 운동, 학술대회를 열어 왔다. 모두 물을 절약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올해 물의 날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가 새겨진다. 이명박 대통령발 대운하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물의 운명이 뒤바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물 정책은 전면적인 전환을 맞게 된 셈이다. 물에 투자한 수십조원의 혈세도 고스란히 무용지물이 될 상황이다. 우리나라 강의 자연적 조건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운하를 만든답시고 무수한 댐과 갑문을 설치한다고 한다. 운하가 있는 나라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한 26㎞의 수로 터널을 뚫어 사계절 내내 600만톤 정도의 물을 채워놓는다고 한다. 국민의 3분의 2가 이용하는 식수원인 강을 포기하고 강변에 우물을 파서 식수원으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1년 만에 삽을 뜨고 4년 만에 완공한다는 터무니없는 계획도 여과 없이 발표되고 있다. 이 환상적인 코미디가 물의 날을 앞둔 우리나라의 엄연한 현실이다. 올해가 지나면 국민들은 아름다운 우리의 강인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을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운하를 만들면 강은 댐과 갑문으로 차단되고 거대한 인공 콘크리트 욕조로 둔갑한다. 물고기 등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을 이동하는 동물들도 사라진다. ‘길바닥 죽음’(로드킬)보다 끔찍한 ‘운하킬’이다. 4년 만에 운하를 완공하려면 수많은 곳에서 동시에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포클레인 굉음과 흙탕물 공사판이 강 한복판에서 벌어질 것이다. 더는 그 은빛 찬란한 강은 우리곁에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오만한 기세라면 5천년 민족의 희로애락을 안고 유유히 흘러온 젖줄이자 생명수인 우리의 강은 역사 필름에서나 찾게 될지도 모른다. 숭례문처럼 말이다.
물은 공공의 자산이다. 그 주인은 이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국민이다.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 잘 보전해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임기 5년의 대통령과 그 측근들 그리고 몇몇 건설업체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주인 노릇을 한다면 그 행위를 중단시킴이 마땅하다. 준엄한 심판을 내려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역시 국민이다.
필자는 유럽에 이어 최근 미국 운하도 관찰하고 조사했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운하가 있으면 선진국이라고 과대 포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05년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피해를 키운 운하는 폐쇄됐다. 강을 직강화해 운하로 둔갑시켰던 플로리다주는 운하를 폐쇄하고 원래의 강을 복원시켰다. 그리고 사유지를 사들여 거대한 습지를 조성하고 있다. 운하는 홍수에 취약하거나 수질오염 대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거대한 토지 제국인 미국조차도 이런 정책전환을 시도하는데 하물며 비좁은 국토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운하 때문에 카트리나 피해가 커질 것을 예측해 12시간 전에 긴급 대피명령을 내리게 한 주역인 루이지애나 주립대 마시리키 교수는 “뉴올리언스 운하 건설을 추진한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다. 그때도 경제논리가 앞섰다. 그러나 그 피해와 책임은 고스란히 30∼40년 후의 사람들에게 남겨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강과 물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국민들이 나서서 이 반자연적이고 반문명적인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오늘 여의도 한강변에 모이자. 낙동강·영산강·금강에서 물을 만나자. 강을 모시기 위해 100일 장정에 나선 종교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진리의 상아탑을 세우는 학자들의 냉철한 지성을 머리에 새기며 강을 보듬자. 만지자. 그리고 느끼자. 만물이 물에서 나왔듯 우리는 그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함을 기억하자.
박진섭/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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