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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5 20:10 수정 : 2008.03.25 20:10

김영호/국제동아시아공동체학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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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서거 100주기를 앞두고 안중근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한 가운데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동아시아 공동체학회 주최 국제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와 안중근’이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아사히신문사 홀에 가득 모인 일본 주류 인사 500여명 앞에서의 안중근 강연은 아직도 ‘사건’이었다. 일본의 한 신문에서도 강연 제목이 전광판에 떠오를 때 ‘일순 숨이 막히는 듯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죽인 테러리스트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다. 나는 “안중근을 한국 독립운동의 영웅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주의자, 아니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의 잔 모네’(유럽통합의 아버지)라는 차원에서 안중근을 소개하고 싶다”고 입을 뗐다. 나는 동남아 여러 나라가 ‘아세안’을 결성하고 중국, 일본이 아닌 ‘아세안’ 주도로 ‘아세안+3’의 틀을 만들고 ‘아세안+3’의 틀이 동아시아 공동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는 한·중·일 주도로 ‘동양평화회의’를 결성하고 점진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참가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열강이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보고 서양 제국주의에 대한 한·중·일 삼국 연대를 주장했으나 아시아주의가 일본의 침략주의에 이용당하자 일본의 침략주의를 억제하는 틀로 아시아주의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전후 유럽에서 밖으로 옛소련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안으로 독일의 팽창을 억제하려고 서유럽연합을 추진했던 것과 비교된다.

안중근은 당시 국제적 분쟁지 여순을 중립화해 한·중·일 공동참여에 의한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그곳에 둘 것을 제의했다. 분쟁의 축을 협력의 축으로 바꾸는 역전의 모델로 현대 동아시아 각종 분쟁지의 해결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회의는 양자관계로서가 아니라 다자관계로 추진되고 구성된다. 공동안보 체제 아래서 공동으로 군대를 해산하고 공동 평화군을 창설하며, 공동산업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공동개발 은행을 만들고 제3의 공동 화폐를 발행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동북아개발은행이나 아시아통화단위(ACU) 구상의 단초적 형태다.

동양평화회의는 각국 정부도 참여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각 국가와 인민을 구별해 시민 참여형 공동평화회의를 상정한다. 고대문화의 공유나 인종주의적 아시아론이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인민 혹은 시민세력이 주도하는 동양평화회의다. 한·중·일 시민 수억명이 가입하고 1인당 회비 1원씩 내면 수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구미 제국주의와 시민을 구별해 구미 시민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아세안+3’ 체제가 동아시아 공동체로 진화하는 데서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시아’ 혹은 ‘일본의 아시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것을 안중근이 구상한 ‘아시아의 중국’, ‘아시아의 일본’이 되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연결시키는 아시아보다 세계 시민을 연결시키는 ‘시민적 아시아’, 양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가 아니라 다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를 구상한 안중근의 탁견이 새삼 주목된다. 나는 ‘오래된 미래’ 안중근을 동아시아의 잔 모네로 소개하며 그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최선두에 세울 것을 제의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유엔대사를 지낸 한 일본 인사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중국이나 일본이 아시아 공동체론을 들고 나오면 모두 경계한다. 한국이 들고 나오고 안중근을 내세울 때 가능성이 커진다.” 회의 후 만찬장에서는 온통 안중근 이야기뿐이었다. 누가 아리랑을 선창하자 모두가 따라 합창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김영호/국제동아시아공동체학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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