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성/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미주개발은행(IDB)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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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행정, 기업, 노동, 과학기술, 외교 등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실천과제들을 무수히 많이 쏟아냈다. 희망적이긴 해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어 소화가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취임사의 그 많고 야심찬 계획 중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대목은 개도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시대정신이 요구하듯 대외원조를 외교정책의 중요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외원조(ODA)는 실질국민총소득(GNI) 대비 0.06%에 불과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지만, 2015년까지 0.25%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대외원조에 관한 국제적 주관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절차가 현재 진행 중이어서 대외원조의 양적인 확대는 반드시 이룩해야 할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대외원조에는 저개발국의 빈곤퇴치와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인도주의적 목적과 원조를 통해 국익을 구현한다는 실용주의적 목적이 존재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정부의 실용주의적 접근에 대해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가 비판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자원과 에너지 외교를 위해 공적개발원조의 수단적 사용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원조를 둘러싼 이와 같은 논쟁은 지극히 초보적이며 비생산적이다. 그 이유는 논쟁의 수준이 대외원조의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무대에서는 원조를 주는 국가나 국제기구 사이에 개도국에 원조주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즉, 금융기관들이 대출시장에서 경쟁을 하듯 ‘원조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첫째, 20세기에는 영국,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에 원조를 집중했듯이 몇몇 공여국간에 수원국을 적절히 나눠서 관리하는 원조 카르텔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늘어나고 공여국과 각종 국제기구가 늘어나면서 원조시장의 카르텔이 붕괴되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현대적 의미의 원조가 시작된 1945년 이후 문을 닫은 원조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둘째, 유상원조의 경우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무상원조의 경우 원조의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은 개도국에 지원이 집중되기 마련이며 정작 원조가 필요한 최빈국은 외면받고 있다. 원조시장에도 양극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른바 몇몇의 우량 개도국은 어디에서 돈을 받을지 고르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후발 선진국으로 이제 막 원조를 늘리려 하고 있지만 이미 국제원조 시장은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다. 결국 우리가 아무리 뜻이 좋고 많은 예산을 준비할 수 있어도 대외원조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원조를 시행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용주의와 인도주의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고 어떤 방식이든 우리의 대외원조가 질적인 우수성을 갖추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원조를 통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 한다면 이를 꼭 성사시켜야 할 것이며, 저개발국의 에이즈를 퇴치하기 위한 원조라면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야 한다. 대외원조에 대한 수준 높은 담론과 전문적인 논의가 절실한 현실이다.곽재성/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미주개발은행(IDB)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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