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4 21:45
수정 : 2008.04.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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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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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가 정치권과 언론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빗댄 표현으로 ‘악어와 악어새’ 같은 거라고 아나운서가 말하는 걸 들었다. 그 순간 별로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를 이 표현이 내겐 매우 크게 들려왔다. 왜 하필 악어와 악어새 같이 좋은 관계를 인간사의 잘못된 관계 정도로 연관시키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서다.
원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는, 스스로 이빨 관리하기가 힘든 나일 악어의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악어새가 청소해 주어 건강관리를 하고 악어새는 악어로부터 안전하고 풍부한 먹거리를 보장받는 조화로운 관계다. 그 관계는 말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거의 절대 의존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를 뜻한다. 이런 걸 ‘상리공생’이라 부른다. 이런 공생 관계는 초식동물과 그들 되새김위 안의 세균들, 개미와 진딧물 등등 동물계의 생태그물 안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특히 정치적인 관계는 이합집산, 권모술수, 토사구팽 등 차마 사자성어가 아니라면 입으로 담기도 힘든, 모략과 배신들이 성행하면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그런 부적절한 관계들이 많다. 이런 걸 악어와 악어새에 비유함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이 밖에도 흔히 우리가 동물에 빗대어 쓰는 속어들 중에는 동물들이 알고 들으면 억울할 것들이 한둘이 아님을, 동물들과 밀접하게 지내는 이로서 많이 느끼게 된다. 특히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서 인간에게 지극히 충성스러운 개와 돼지, 소와 닭에 관련된 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부분은 동물들을 비하하여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최대의 모욕을 느끼도록 한다.
그 대표적인 말로 ‘개새끼’라는 말, 그런데 ‘강아지’라 부르면 최대의 귀여움을 나타내는 말이자 같은 의미인데도 ‘개새끼’는 최대의 모욕을 주는 언어가 된다. 그런데 ‘망아지’는 또 욕이 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란 것도 가끔 비밀을 유지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이긴 하지만 실은 쥐나 새들은 다가오는 사람들의 동태에 주목하는 것이지 말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동물 똥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개똥은 오랫동안 열을 내리는 약으로도 쓰였고, 돼지나 소똥은 비싼 퇴비 혹은 건축 재료로도 쓰인다.
사실 인간이 발명한 것들 대부분이 동물들한테서 배워 온 것이다. 비행기나 잠수함이 매나 돌고래를 보지 않았다면 과연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돌고래나 박쥐의 초음파 역시 널리 인간세계에 활용되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회규범조차 늑대들에게서 배운 것이란 설이 있다.
사람들에게 동물적인 감각을 가졌다고 하면 칭찬이 된다. 그러나 어떤 동물 같다고 하면 욕이 된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동물세계의 몰이해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동물들이 일부 감각이 뛰어남은 인정하겠지만 그 밖의 것은 무조건 인간보다 비루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을 한가지씩 더 알아 갈수록 예전에 분명 욕이던 것이 칭찬이 되기도 한다. ‘소걸음’이라면 얼마 전까지 느림과 게으름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여유와 낭만적인 것으로 들리지 않는가.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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