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필규/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
기고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두더지 게임’식이다. 오락실 게임에서 두더지 머리가 튀어나오면 방망이를 휘둘러 구멍 속에 밀어넣는 것처럼, 문제가 불거지면 드러난 문제만을 땜질하는 임시방편의 대책이다. 이는 힘만 들고 성과는 별로 없는 고비용·저효율 해법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별로 힘들이지 않으면서도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번호순번기’ 식의 해법도 존재한다. 줄을 잘못 서서 생기는 ‘불운’이나 새치기 등에 의한 ‘불공정’이 최소화되고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여기서 두더지 게임식 해법이 문제의 겉면만을 치료하는 대증요법이라고 한다면 번호순번기식 해법은 문제의 근본을 치료하는 시스템 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 해결 방법을 중소기업 문제에 적용해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을 평가해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펴면서도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나라다. ‘번호순번기 요법’이 아닌 임시방편의 ‘두더지 게임 요법’을 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기업 정책을 세울 때 두더지 게임식을 계속해 왔던 근본적인 이유는 중소기업의 숙명적 한계 때문이 아니라 중소기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제도적 기준이 잘못되었던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소기업을 정의하는 기준은 업종별로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종업원 규모 300인 이하의 기업을 말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가르는 기준이 왜 종업원 300인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고 논리적인 답변이 돌아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답은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게 하니까” 아니면 “정책집행의 편의상”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양적 규모가 더는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대다. 뛰어난 핵심 인재 몇 명으로 구성된 소기업이 평범한 인재 수백, 수천명의 대기업보다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종업원 수 300인을 기준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나누다 보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300인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도 중소기업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300인 이하에 머무는 ‘영세업자 정신’의 기업으로 왜소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또 현재는 창업 뒤 10여년이 지나도 중소기업 기준을 만족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런 지원 방식으로는 한정된 중소기업 지원 재원이 성장 중소기업이 아니라 한계 중소기업으로 왜곡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 지원 취지가 현재는 취약하지만 장래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지원은 당연히 창업 초기 기업에 집중되어야 하고, 상당 기간이 지난 뒤에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지원보다는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진정으로 혁신과 성장의 주역이 되게 하려면 지원기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종업원이나 자본금 규모를 기준으로 한 중소기업 지원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창업 5년 이내의 기업에만 지원을 집중하고, 5년 넘은 기업들은 자력 성장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원시한이 끝나는 일몰시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경쟁력을 갖추려 최선을 다할 것이고 창업 5년이 지난 기업들은 중소기업의 혜택에 연연해 하지 않고 성장을 끌어올리려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두더지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번호순번기와 같은 시스템적 혁신을 할 것인가? 중소기업 정책은 이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백필규/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