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14 21:35
수정 : 2008.04.14 21:46
|
홍승권/서울의대 의생명정보학교실 교수
|
기고
최근 외국 체류 경험이 전혀 없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20대 여성이 인간 광우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이 20대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최종 확진된다면 미국 본토에서 광우병 쇠고기를 섭취한 탓에 인간광우병에 걸린 최초의 사례가 된다. 이와 함께 미국산 소 ‘30개월 미만’ 기준을 아예 포기하고 연령 제한을 철폐해 수입한다는 뉴스가 또한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연령에 관계없이 수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국민의 식탁에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소갈비가 올라올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까지의 수입제한 조처를 정치적 협상을 위해 이명박 정부가 과감히 풀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30개월 미만’이 연령상 광우병 안전 기준으로 통용돼 왔다. 왜냐면 일부 30개월 미만에서도 광우병소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대부분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뼈가 붙은 쇠고기’의 허용이 지난 참여정부에서부터 일기 시작하더니, 이명박 정부가 뇌나 안구,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 등 가장 위험한 종류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받아들이는 쪽으로 협상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장 다양한 소 부위를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광우병에 가장 취약한 유전자형인 메티오닌 동질접합체(MM 유전자형)를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95%나 된다. 즉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역사적으로 의과학자들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강조해 왔다.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사람이나 환경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인과관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더라도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수많은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대가로 확인한 원칙이다. 예상컨대, 광우병에 걸려 고생할 이들은 다름 아닌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학교 급식이나 식당 반찬으로 먹게 될 우리 아이들과 군인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다. 더는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에프티에이를 협상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최대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연맹이나 퍼블릭시티즌도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정부들도 똑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중국·대만·홍콩 등 주요 수입국의 경우 어느 곳도 아직 연령 제한을 풀지 않았다. 또한 미국 내 동물성 사료사용 금지 조처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요사태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로서 의생명과학자로서 경고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전혀 안전하지 않다. 2005년 미국 안 검역조처의 문제점을 미국 정부 스스로 인정해 미국 행정부가 입법예고한 동물성 사료 규제 강화안도 당시 축산업계의 강한 반발로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대지 않은 채 미국 방문 전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풀려고 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생명의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물론 자기 손으로 눈을 가리면 하늘을 막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알량한 정치적 타협이 현실로 벌어진다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를 소홀히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는 광우병의 청정지역이 아니다.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을 포괄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대해 국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관리하느냐에 따라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이 담보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홍승권/서울의대 의생명정보학교실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