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1 21:25
수정 : 2008.09.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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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철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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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장 근본적인 진리의 가르침인 종교는 생사와 시공을 초월하고, 나와 너, 우리와 세상 사이의 분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껴안는 진리일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사고 틀이나 언어로는 그 실체를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음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가르침 모두 표현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간 갈등이 전쟁과 학살로 이어진 사례는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세 유럽의 이슬람에 대한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신교와 구교의 충돌로 심지어 독일 같은 곳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중세 마녀사냥의 피해사례들이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약자들에게 집중되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종교문제로 끊임없이 사회가 소란스럽다. 청와대에서 정무직 공무원들의 종교를 조사한다고 하더니, 연이어 청와대의 고위 관리가 모든 정부 부처의 ‘복음화’가 꿈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모든 정부 부처의 복음화는 특정 종교의 시각에서만 복음화일 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나, 나아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질곡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를까.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관리하는 지리정보시스템에서 사찰 부분을 통째로 빠뜨리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통사찰은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에도 경관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어느 사단급 부대에서는 하필이면 부처님 오신 날 아침에 영외거주자 비상소집 훈련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훈련을 추진한 간부가 특정 종교인이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국무총리가 조계사를 방문하여 “정부 내에서 종교차별이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고 하였다. 문제를 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른 것이다. 총리의 발언이 있은 직후에 조계사 앞에서 벌어진 상식 밖의 사태를 접하면서 불자들로서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받고 총리의 발언까지도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최근에는 개신교의 유명 목사가 불자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내용으로 다른 종교를 폄훼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그 말대로라면 이제 이 땅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문제의 목사가 나름대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고 평소에 ‘정교 분리’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니 더욱 우려스럽다. 저 캄캄한 중세 유럽의 신정 일치 국가를 끄집어내 이 땅에서 다시 살려내겠다는 것인가.
고위직 공무원들의 종교를 조사하고, 군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비상소집 훈련을 하고, 시 예산을 ‘성시화’(聖市化) 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반대로 신앙의 침해이다. 21세기에 뜻하지 않게 종교 차별 문제로 국민들의 마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성탄일에 스님들이 교회나 성당에 가서 함께 예수님을 찬미하고, 부처님 오신 날 신부님과 목사님들이 절을 방문하여 함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기리는 것은 한낱 꿈일까. 종교인들이 영토 확장을 하듯이 교세를 넓히기보다는 내면으로 참구(參究)하며 불을 밝히고 각자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르침을 실천할 때 비로소 빛과 소금이 되어 주위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세상도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조원철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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