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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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 추진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추진하는 쪽에서는 수월성 교육과 국제화 시대의 인재 양성 필요성을 내세워 설립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초등 수준에서까지 망국적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할 것임을 강조한다. 얼핏 보면 양자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국제중 설립 논란은 ‘옳고 그름’보다는 ‘정책적 선택’의 문제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국제중 설립은 수월성 교육이나 사교육비 증가 등과는 유가 다른 본질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효과가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발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보통의무교육의 단계인 중학교에서 교수언어를 우리말 대신 외국어로 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점이다. 보통의무교육이란 한 국가의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누구나 공통적으로 받아야 할 교육을 말한다. 헌법과 교육관계법은 모든 국민의 자녀가 9년의 의무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교육은 교육부 장관이 고시한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그러한 교육을 매개하는 언어가 ‘국어’여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점에서 일반 교과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영어 몰입교육은 이미 국적을 포기한 교육이며, 몇 해 전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정책을 관습헌법을 내세워 위헌으로 판단한 예에 견주어 ‘위헌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영어를 좀 잘하도록 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을 기대하는가!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고 국제 전문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비교육적 반국가적 발상이 버젓이 국가의 정책으로 추진될 수 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중학교’라는 명칭도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며 그 점에서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현재 국제중학교 설립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의 특성화 중학교 관련 조항이다. 여기에는 교육감이 ‘교육과정 등의 운영을 특성화하기 위해’ 특성화 중학교를 지정 고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대안교육과 예능교육을 위한 학교들이 이미 설립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학교의 명칭은 여느 중학교처럼 고유명사 ‘00중학교’로 되어 있지 ‘00대안중학교’로 되어 있지 않다. ‘국제중학교’라는 명칭은 ‘청심국제중고등학교’의 설립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제고’는 특목고 중의 한 유형으로 법적 근거를 가진 명칭이지만, ‘국제중’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명칭이다. 물론 교육과정 특성화의 한 방편으로 국제 이해교육을 강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과정의 내용 문제이지 교수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요컨대 ‘국제중’이라는 말은 은연중 그것이 ‘국제고’와 유사하게 특수목적 중학교인 양 보이도록 하여 시장 가치를 높이려는 기만적이고 위법적인 용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문과 세계의 이해를 위한 기초를 다져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낯선 언어로 서툴게 구사되는 교사의 설명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이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 도덕시간에 영어로 열심히 가르친 똑같은 내용이 우리말로 하는 국사 수업에서 반복되길래 ‘이거 도덕시간에 다 배웠지?’라고 물으니 ‘아뇨, 처음 보는데요’ 하더라는 청심중학교 사례를 영어 몰입교육에 목매는 사람들은 깊이 검토해 볼 것을 권한다.이종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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