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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5 19:21 수정 : 2008.09.05 19:21

양도식 런던 도시연구소 ‘어번 플라스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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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생물학자 출신의 도시계획가인 패트릭 게더스는 도시가 생성, 성장, 소멸한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도시화와 성장을 겪은 한국의 도시들도 게더스의 주장처럼 성장과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그 양상은 고도·압축 성장으로 더욱더 복잡하며 그만큼 해결책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번영의 상징이었던 서울 강북 도심의 쇠퇴, 대전 옛 도심의 공동화, 대구 중심지구의 이동 등은 한국 대도시의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자본·인구·사회환경의 재편 과정에서 물리적 환경의 쇠퇴, 빈곤·소외, 사회 인프라의 결핍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빈곤이 세대를 넘어 악순환될 듯한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며, 커뮤니티의 자생력을 고취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게더스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도시는 자연과 달리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넘어 ‘재생’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우리 도시들은 현재 쇠퇴와 재생의 기로에 서 있다. 도시재생 ‘전략’과 장기적인 ‘정책’ 제시는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다.

성공적인 전략과 정책을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의 개선을 넘어 시민들을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립하도록 하는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 필요하다. 또 도시재생 사업은 특정 계층이나 개발업자의 이익창출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정의’의 수단이어야 한다. 물리적 환경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협상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공간 민주화’도 실현돼야 한다.

이런 과정들은 장기적인 성공과 사회참여, 사회융화의 기회를 준다. 그런 면에서 한 사회의 도시재생 사업의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같다. 이와 관련해 영국 런던의 도클랜드 도시재생 사례는 교훈을 준다. 런던 중심 지역의 크기와 맞먹는 22㎢의 방대한 토지, 1981년 이후 27년의 사업기간 등 도클랜드 사례는 세계 도시재생 사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98년 해체된 런던 도클랜드 개발공사의 성적표에는 공공부문의 100만파운드(20억원) 투자가 23개의 일자리, 8500㎡의 사무공간, 7.5채의 주택을 생산했다는 결과가 기록돼 있다. 그리고 개발 당시 3만9천이던 인구가 98년에는 8만4천으로 늘어났다는 통계도 성과로 부각된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는 많은 물음표가 뒤따른다. 100만파운드로 만들어낸 23개의 일자리 가운데 임대주택이 95%였던 도클랜드 지역 원주민들의 몫은 몇 개였는가? 8500㎡의 사무공간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가난한 도클랜드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돌아갔는가? 7.5채의 주택 가운데 도클랜드 지역 주민을 위한 양질의 임대주택은 몇 채나 지어졌는가? 치솟는 개발지역의 집값과 임대료를 내지 못해 더욱더 쇠퇴한 지역으로 이동한 거주민의 수는 얼마인가? 사업 전체 비용의 50%가 135㎞의 교통 인프라에 투자됐는데, 쇠퇴한 도클랜드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얼마나 투자되었으며, 그들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하였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랑스럽게 제시된 도클랜드의 성적표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면,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도 물리적·경제적 경계를 넘어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와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공간 민주화’를 위한 수단이 돼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양도식 런던 도시연구소 ‘어번 플라스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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